약속시간이 1시간 앞당겨졌다. 집에 주차하고 한길문고까지 걸어가려면 늦을 것 같아 원도심에서 차를 타고 그대로 서점으로 갔다. 한길문고 바로 밑에 세워둔 차에 다시 탔을 때는 책이 늘었고, 선물 받은 쿠키도 두 상자였다. 손에 든 모든 것들을 차 뒷자리에 곱게 모셔두고 출발했다.
아무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근데 핸드폰이 자동차 뒷자리에 있었다. 멈춰야 하는데, 앞으로 계속 가기만 했다. 동네를 크게 한 바퀴 돌고는 우리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도착해서 강동지한테 전화했다.
“나 출판계약서 두 장 썼어.” “응?” “아무 것도 없는데, 두 권 계약했다고! 선인세도 진짜 많아.” “축하해. 잘됐네.” “글을 잘 써야 잘된 거지.” “잘하겠지. 근데 나 오늘 늦어. 저녁밥 어떻게 할까? 시켜줄까?”
며칠 전에 주니어김영사 문자영 팀장님이 집으로 책을 보내주셨다. 오늘은 한길문고로 찾아오셨다. 내가 가진 이야기 씨앗은 겨우 한두 개고 싹이 틀지 안 틀지도 모르는데 다 좋다고 하셨다. 출판사 팀장님과 만난 지 2시간 만에 계약서 쓰는 것도 처음, 계약서를 두 장 쓰는 것도 처음이었다. 우편으로 받아 내 방에서 고요하게 써왔던 터라 팀장님이 보는 데서 계약서에 내 이름을 한글과 한자와 영어로 쓰는 것도 떨리고 헷갈렸다. 특히 裵.
그런데 강동지는 밥타령이나 하고 있다니. 전화했더니 자매님은 당장 우리 집으로 왔다. 그런데 계약서 두 장 썼다는 얘기를 잘 들은 것 맞아? 웹소설을 즐겨 읽는 자매님이, 새로 바꾼 데스크톱 모니터 때문에 눈 아프다며 지난 달까지 내가 썼던 노트북을 가지러 온 거였다. 나 완전 컴맹인데, 전에 썼던 노트북을 싹 밀고, 자매님네 집에 가서 인터넷 연결하고, 자매님 읽기 좋게 무슨무슨 프로그램도 찾아서 내려받아줬다.
강동지와 자매님(정리정돈을 잘하고 음식을 잘하는 두 사람은 <더우면 벗으면 되지>를 읽고도 빵 터지지 않음)은 평상시와 똑같았다. 그 덕분에 걱정하느라 으스스 춥던 마음이 누그러들었다.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기필코 원고를 보낼 수 있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밤은 깊었고, 한길문고 대표 문지영 언니한테도 이 기쁜 소식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