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

by 배지영



오늘은 일 잘하는 작가처럼 보냈다.
주니어김영사 팀장님한테 원고를 보내고, 시공사 편집자님이 보내준 2교 교정지를 받았고, 글쓰기 에세이 전자계약서를 보내겠다는 사계절 팀장님의 전화를 받았다.

한길문고 에세이 5기 수업 준비도 하느라 선생님들 글도 출력해서 읽었다. 딸을 여섯 명 낳고 기른 어머니에 대한 글이 있었다. 시어머니에게 구박받았지만, 지금은 딸들이 다 효도하고 비행기도 많이 태워줘서 아들 가진 어머니들이 부러워한다는 한 어머니의 삶.

딸 셋인 우리 엄마는 자력으로 비행기를 탔다. 아니면 엄마 형제자매들이랑 타거나. 비도 오고, 미안한 마음도 들고, 그래서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엄마, 뭐 한당가?”
“밥 먹제라우.”
“엄마, 토요일에 서울에서 친구들 와가지고 횟집 갔어.”
“오메! 우리 딸 다 컸네이. 회도 먹는다요?”
“으하하하! 엄마, 나 늙었어. 엄마는 내 나이 때 손주 봤다고요.”

이야기는 결국 옛날로 갔다. 엄마는 어린이날에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 광주 사직공원이나 지산유원지에 우리 사남매를 데려갔다. 30대 중반의 시골 아주머니는 인파 속에서 아그들을 잃어버릴까 봐, 길을 못 찾을까 봐 애탔을 거다. 여름에는 닭백숙 할 솥단지에, 수영복에, 수박 한 통을 혼자서 이고 지고, 새끼들을 해수욕장으로 데려갔다.

초등학생부터 중학생인 우리 사남매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10분에 한 번씩, 하루 내내 싸웠다. 그때는 동물원 후문이나 시외버스터미널 앞에 포장마차가 있었다. 육체노동으로 단련된 젊은 엄마는 새끼들을 길에 세워두고 포장마차로 들어갔다. 우리가 유일하게 안 싸우고 조용한 순간이었다. 엄마가 캬! 하면서 소주를 마시던 소리, 오드득 오드득 해삼을 씹던 소리가 선명하다.

“엄마, 그때 우리 데리고 다니면서 너무 힘들었제? 그래서 집에 오기 전에 꼭 소주에 해삼 먹은 거야?”
“새끼들 데리고 다니는 일이 힘들가니? 엄마가 좋아한 게로 먹었제요.”
“뭐야? 근데 엄마, 소주는 왜 마셨어?”
“생것 먹는디 어쭈고 술이 빠진다요?”

수십 년 동안 나 혼자서 오해한 거였다. 엄마는 그때 전혀 힘들지 않았고, 그저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맛있게 먹고 마셨을 뿐이었다. 참! 우리 외할아버지가 엄마한테 한 유언도 음식에 관한 거였다.

“금자야! 날씨가 섭씨 20도로 내려가야지만 생것을 먹어라이.”

물론, 엄마는 외할아버지가 남겨준 말씀을 안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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