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와서 먹는 이유

by 배지영

엄마는 1949년생 소띠. 영광 법성포에서 굴비 엮는 일을 한다.
아빠는 1948년생 쥐띠. 골드 악세사리와 나이키 운동화와 구두와 신상 셔츠와 자켓을 좋아한다. 하지만 무산자. 엄마한테 기대서 산다.

“해준 것도 없는디야....”
엄마는 우리가 주는 용돈을 안 받는다. 당신 손으로 먹고산다는 자부심이 있고, 자식들한테 짐 될까봐 두려워한다. 날마다 엄마네 아파트 뒤에 있는 인의산 둘레길을 걷는다.

나이 들고나서 엄마 심부름을 매우 잘하는 아빠는 무릎 아프다고 걷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내가 시켰다. 두 분이서 꽃이 핀 백제불교 도래지에 가거나 둘레길을 걸으라고. 아빠는 며칠 뒤에 쌍수가 잘된 당신의 셀카와 앞서 가는 엄마 사진을 보내왔다.

잘했다고,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었다. 엄마가 너무너무 싫다고 해서, 20만 원도 아니고, 30만 원도 아니고, 단돈 3만 원을 보냈다. 식당에서 딱 밥 한 그릇씩 사먹을 돈이었다. 그 적은 돈 때문에 엄마는 나한테 카톡을 보냈다.

“딸, 돈 보내지 마라. 부탁이다. 하~ 아직은 돈 있다.”

전화하면 짜증을 낼 것 같았다. 나는 엄마보다 돈이 훨씬 많다고, 돈 자랑을 할 것 같아서 카톡으로 사과했다. 당분간 엄마랑 절교하고 싶다는 마음이 저 속에서 훅 치고 올라왔다.

오늘 출근해서 일하고 있는데 배지현이 사진을 보내왔다. 봄마다 엄마가 택배로 보내는 쑥떡이었다. 나는 자매님네 집에 가서 떡을 가져다가 먹지 않는다. 그걸 아는 자매님이 웬일로 오늘은 10개만 가져가라고 했다.

2009년 초봄부터 초여름까지 나는 원광대학교 병원에 있었다. 엄마 아빠는 임신한 여성에게 쑥이 좋다는 말을 들었다. 엄마가 낮에 굴비 엮는 일을 하는 동안에 법성 들판의 쑥은 방앗간에 ‘납품’ 알바를 하는 어르신들이 싹 다 캤다. 엄마 아빠는 밤마다 랜턴을 켜고 산에 올라서 쑥을 캤다.

주말에 떡을 해서 병원에 온 엄마는 한 입만 먹어보라고 했다. 좀 울었다. 의사선생님은 단 한 번도 아기의 건강을 장담하지 않았고, 나는 무슨무슨 수치가 몽땅 다 나빠서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래도 엄마는 ‘무한도전’ 하는 시간에 나한테 말을 걸었다. 좋아하니까, 그거라도 보고 웃으라고.

퇴근하는 길에 자매님네 집에 들렀다. 자매님이 냉동실에 넣고 먹기 좋게 소분해 놓았다. 내가 제법 잘 먹으니까 자매님은 엄마한테 빙의한 사람처럼 흐뭇하게 웃었다. 어떻게 올해는 떡을 가져갈 생각을 다 했느냐고 물었다.

3월에 영광 가서 보니까 기골이 장대했던 엄마 뒤태가 늠름하지 않았다. 이제부터 엄마가 먹으라고 하는 건 거절하지 않기로 결심한 이유다. 그래서 저번에 보리굴비도 가져온 거다. 언제 변심할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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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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