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반 때문에

by 배지영

땡볕에 용기를 잃는 타입이다. 멀쩡하게 잘 걸어가던 곳도 여름에는 차를 타야 했다. 걸어서 10분 채 안 걸리는 한길문고도 운전해서 출근했다. 서점에 주차할 데가 없어서 빙빙 돌다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다.


6월 말이었다. 마침 집에 있던 강제규한테 서점까지 태워달라고 부탁했다. 짝은 형수님한테 물려받은 강제규의 경차는 앞뒤와 양옆이 꼼꼼하게 긁혀 있었다. 뒷좌석에는 쟁반이 하나 있었다.


“저거 뭐야?”

“쟁반이지.”

“엄마도 알지. 근데 쟁반이 왜 있냐고?”

“음식 포장해와서 여자친구랑 먹으니까.”


코로나가 심해져서 카페나 밥집도 마음 놓고 가지 못하는 강제규는 여자친구랑 아파트 주차장에서 데이트했다. 나보다 키가 크고 예쁘고 젊고 아름다운 사람 둘이 조그만 자동차 안에서 만날 영화 보고 웃고 노는 게 마음에 걸렸다. 드라이브도 하고 그러라고 주말마다 내 차를 빌려주었다. 어젯밤까지.


곧 개강, 강제규의 여자친구는 학교에 다니기 위해 짐을 싼다. 이제 나는 월요일 아침마다 빌려주었던 내 차를 찾으러 아파트 뒷동 맨 뒷자리 주차장까지 갈 필요가 없다. 시동을 걸고서 등받이와 백미러를 조절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부모 마음은 자식 앞에서 금방 허물어지게 설계되어 있으니까 이 질문에 대비는 해야 한다.


“엄마, 엄마 차로 원주(여자친구 학교) 갔다 와도 될까요?”

“안 될 걸. 너무 멀잖아.”

“나 운전 잘해요. 엄마 차 확인했죠? 안 긁어먹었잖아요.”


며칠 전에 나는 코로나백신 1차 주사를 맞았다. 하필 그날은 강제규 휴가였다. 하필 내가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에 우리 집에서 여자친구와 약간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소파에 누워서 <제인 에어>와 <오만과 편견> 영화를 보겠다고 계획을 다 짜놨던 나는 플랜B를 실행했다. 아이들이 식사를 마치고 데이트 하러 나갈 때까지 1시간 동안이나 주차장에서 기다렸다.


#안전운전

#엄마차가좋냐

#자식이뭐라고

#코로나1차접종마침_화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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