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살림

by 배지영


일을 너무 굼뜨게 한다.

장르가 다른 글을 동시에 쓰던 시절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런데도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초등학교 3학년 여자아이가 주인공인 동화와 남편의 레시피를 같이 쓰고 있다. 하루 내내 예열만 하다가 원고지 한 장 쓰고 끝나는 날도 있다.


돌아보면 나는 처음부터 운이 좋았다. ‘브런치북 대상’을 받고 첫 책을 펴낸 이후로 계속 출간하고 출판 계약서를 쓰고 작업을 해왔다. 1년에 2권 이상 꾸준히 쓰겠다는 결심은 작년까지 잘 지켜졌다. 그런데 문필업은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 실컷 맛있게 먹고 바로 다음 끼니 걱정하는 신세라고 할까나.


지난봄에 사계절 출판사 최일주 팀장님, 이혜정 차장님과 한길문고에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몇 가지를 제안하셨는데 내가 가장 자신 없는 게 글쓰기 에세이였다. 글쓰기는 몸으로 익히는 거다. 배운다고 쓸 수 있는 게 아니지만 나는 또 서점에서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일주 팀장님과 이혜정 차장님은 글쓰기 수업을 바탕으로 써보라고 가이드를 해주셨고 나는 계약서에 나온 날짜를 어기지 않고 완성했다.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가제):독자를 에세이스트로 만드는 작가의 글쓰기 수업


보통은 여기서 끝나지만.... 며칠 전에 원고량이 부족하다고 조금 늘리라고 하셨다. 나는 ‘편집자는 옳다’주의자다. 무조건 따른다. 그래야 이 책 좀 사주세요, 떳떳하게 독자들에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수업 시간에 말 줄임표는 1년에 한 번, 생일날 오후 4시쯤에만 쓰라고 가르쳤다. 식구들도 친구들도 몰라줄 때 ‘오늘 내 생일인데..... ’라고 하라고. 근데 지금 말 줄임표 장난 아니게 쓰고 있네요...) 처음 목차를 짜던 때처럼 막막하다.


오늘 오전 이혜정 차장님은 눈 온다며 파주 사진을 보내주셨다. 나는 그때 미용실에서 S컬 펌을 하고 있었다. 산뜻하게 집에 갔더니 강썬님은 유튜브 보고 있고 거실은 건조기에서 꺼내놓은 양말이 작은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점심도 거르고 유튜브로 양말 개기를 익힌 뒤에 따라 해봤다(장장 1시간 20분 걸림).


몇 사람한테 양말 갠 사진을 자랑하고 나니 마음속이 근질근질했다. K랑 쓸모없는 잡담을 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때 마침 K가 서울 눈 온다고 카톡을 보냈다. 우리가 희희낙락하는 사이에 바깥은 더욱 어두컴컴해졌다. 날씨 핑계 잘 대는 나약한 사람인 나는 폭설을 뚫고 서점 작업실에 출근했다. 그리고 다시 이혜정 차장님의 메일을 받았다. 추구해야 할 방향이 보인다. 너무 고맙고 좋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잘 쓸 거다.



#양말개기

#쓰는사람이되고싶다면

#글쓰기에세이

#사계절출판사

#양말은강썬님꺼_서점가는길에리어커에서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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