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파스 아껴 칠할 때 나오는 색

by 배지영

어린 지현은 남달랐다. 흑백 텔레비전 보는 시골에서 예쁘고 과감한 것들을 탐냈고 잡지에 나온 액세사리를 사달라고 엄마한테 졸랐다. “어디서 이런 애기가 나왔으끄나.” 겨우 서른두세 살이었던 엄마는 혀를 차면서도 가짜 진주 목걸이와 레이스가 달린 치마와 끈이 달린 빨간 구두를 사줬다. 아빠는 지현에게 부르뎅 아동복과 48색 크레파스를 사줬다.


시골은 겨울이 길다. 개구리가 잠 깨기 전부터 아이들은 코를 흘리면서 밖에서 논다. 햇살이 따뜻한 것 같아도 가만 앉아있으면 손이 깡깡 어는 3월에도 야외 수업을 좋아한다. 4월부터는 미술 시간에 풍경화 그리러 나간다. 5월에도 6월에도 크레파스를 아껴야 하는 아이들은 나뭇잎을 칠할 때 설설 칠했다. 딱 봄물 올라오기 시작한 4월의 버드나무 색깔처럼. 색감이 남달랐던 지현은 크레파스를 쿡쿡 눌러 진하게 썼고, 48색 크레파스는 하룻만에 잃어버리고 왔다.


오늘 옛생각이 난 건 수양버들 덕분이다. 우리나라에서 꼴찌로 꽃 피려고 작정한 것 같은 은파의 벚나무들 사이에서 늠름하고 멋지게 서 있는 수양버들. 어릴 때는 동백꽃나무하고 수양버들나무를 ‘전설의 고향’만큼 무서워했는데 지금은 아름답다고 감탄 100번씩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통과하는 것처럼 마음이 부풀었다가 집에 온다.




#은파호수공원

#카누

#수양버들

#벚꽃

#대한민국도슨트군산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반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