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기(feat 샤프 연필 두 자루병)

by 배지영

‘샤프 연필 두 자루병’이 있다. 한 자루만 있으면 너무 신경 쓰이고 일도 제대로 못 한다. 언제까지 이 병에 끌려다닐 것인가. 사흘 전에 한 자루 잃어버렸을 때 완전히 달라지기로, 가지고 있는 샤프 연필 한 자루에만 충심을 쏟기로 마음먹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났더니 샤프 연필이 사라졌다. 책에 밑줄 긋는 나는 샤프 연필 없으면 독서를 못 한다. 내일 북클럽 있어서 꼭 읽어야 할 책이 있는데 큰일 난 거다. 잃어버릴까 봐 소중하게 필통 안에 넣어놨는데 필통째 없어졌다.


내 물건들은 주인이 당황하면 ‘투명 기능’을 써버린다. 아무리 찾아도 내 눈에는 안 보인다. 기억을 더듬으며 책상과 침대를 치우고 정돈했다. 어제 서점 작업실에서 여러 가지 책과 물건 가져와서 정리할 때 필통을 같이 버린 걸까. 쓰레기봉투까지 싹 뒤져봤다. 없다.


‘흑흑. 이럴 줄 알았어. 샤프 연필은 무조건 두 자루 있어야 하는데,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한 자루 더 안 사고 버틴 거야?’


열 살 무렵에 발병한 ‘샤프 연필 두 자루병’은 못 고친다. “나 미치는 꼴 보고 싶어?” 침대에 대자로 뻗어서 절규했다. 오전 7시 20분부터 애가 탔는데 점심 먹기 직전에야 찾았다. 필통은 침대의 매트리스 사이에 콕 박혀있었다.


참고로 나는 요새 샤프 연필처럼 자동차 키도 두 개 갖고 다닌다. 배터리 수명이 다 됐는지 자동차 문이 안 열려서 두 개를 번갈아 가며 눌러본다. 저번 저번에 스마트 키 잃어버려서 키 박스를 새로 교체한 적도 있다. 고질병에 대들지 말고 머리를 조아리자. 내일 똑같은 샤프 연필 사러 가는 김에 자동차 서비스센터 가서 배터리 문제를 해결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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