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강성옥씨가 일찍 퇴근했다. 밥 먹고 샤워하고 소파에 누워있다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본방 보면 되는데 여전히 주방에 있었다. 설렁탕집 깍두기 담근다고 무를 썰어서 소금에 절여 놓고 실파 사러 나간 김에 물렁복숭아(강썬이 좋아함), 자두(내가 좋아함), 수박(강제규와 내가 좋아함)을 사 왔다.
사흘 전 일요일에 큰시누이가 고구마순 김치(구씨가 좋아함ㅋㅋㅋㅋ)와 오이소박이(내가 좋아함)을 대용량 통에 담가서 보내줬다. 깍두기 따위 없어도 되는데 강성옥씨는 평일 저녁에 왜 자기 신세를 들볶을까.
사계절 출판사 이혜정 차장님도 <남편의 레시피> 원고를 읽으며 ‘왜?’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품었다. 강성옥씨는 도대체 왜 한끼 굶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던 옛날 엄마들처럼 밥을 차리고 있느냐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작업할 때 ‘ㅋㅋㅋ’을 가지고도 내 의견을 물었던 차장님이 시아버지 이야기와 강제규 이야기를 한 편씩 더 쓰라고 제안했다.
1933년에 태어나서 20대 시절부터 음식을 하셨던 아버지 얘기를 충분히 썼다고 -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 - 생각했다.
1999년에 태어나서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식구들 밥을 차렸던 제규 이야기를 쓸 만큼 썼다고 - <소년의 레시피> - 생각했지만.
나는 재깍 그러겠다고 하고서 새롭게 접근했다. 1960년부터 1968년 사이에 태어난 강성옥씨 5남매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아버지는 정말로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온 신인류였다. 인터넷도 없고 레시피도 드물던 시대에 못하는 음식이 없었다. 강성옥씨 5남매는 아버지가 해주는 음식을 각자 입맛대로 그리워했다.
큰딸 강현숙 – 겉은 차갑고 속은 따뜻한 수육
작은딸 강민숙 – 경로당에서 해준 오리주물럭
큰아들 강기옥 – 만경강 하구에서 떠준 전어회
막내딸 강현옥 – 봄에 시래기 넣고 고아준 붕어찜
막내아들 강성옥 – 한여름에 육수 내서 해준 냉면
인트로에 ‘시대보다 앞서서 요리했던 남자’ 로 아버지 얘기를 쓰고 나서 이마를 탁 쳤다. 강제규 글까지 한 꼭지 들어가니까 아귀가 딱 맞는 것 같았다. 정말로 편집팀의 혜안에 감탄했다. 스티븐 킹이 말한대로 ‘편집자는 언제나 옳다.’ 중요중요중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