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계약서에 사인하고는 몇 달에 걸쳐 글을 쓴다. ‘이렇게 쓰는 거 맞아?’ 스스로를 의심하면서도 이야기를 끝마친다. 담당 편집자에게 원고를 보낼 때, 쓰는 사람의 욕망도 딸려가 버리는 모양이다. 작업 끝내고 드라마를 정주행하겠다는 결심은, 호수 보이는 카페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겠다는 각오는 사라지고 없다. 몇 날 며칠 편집자의 말만 기다린다.
“작가님, 도대체 강성옥 씨는 왜 그렇게 밥을 하는 걸까요? 왜요?”
<남편의 레시피> 원고를 읽은 사계절 출판사 이혜정 부장님은 근원적인 질문을 던졌다. 한 끼 굶으면 큰일 나는 줄 알던 옛날 어머니 같은 강성옥씨의 태도가 독자에게 닿으려면 필요한 게 있다고 했다. “남자가 처자식 먹일라고 밥하는 것은 열심히 산다는 증거”라던 시아버지 강호병 씨와 야간자율학습 째고 고등학교 3년간 저녁밥 지은 큰아들 강제규 이야기를 한 편씩만 쓰라고 제안했다.
나는 버퍼링에 걸린 것처럼 끔벅거렸다. 1933년에 태어나 요리책도 없던 시골에서 무슨 음식이든 척척 만들어 식구들에게 먹인 아버지의 삶을 20여 년에 걸쳐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에 충실하게 담았다고 여겼다. 1999년에 태어나 고등학교 1학년 봄부터 밥을 지은 큰아이 이야기는 <소년의 레시피>에 다정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했다.
제사 준비하시던 아버지 강호병 씨
하지만 이혜정 부장님은 <남편의 레시피>보다 앞서 펴낸 책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도 작업한 편집자. 쓰다 막혀서 하소연하면 길을 알려주고, 원고에 쓰인 ‘ㅋㅋㅋ’을 없앨 때도 작가의 의견을 물었던 편집자. 나는 끝냈다고 생각한 원고를 비집어서 틈을 만들었다. 강성옥 씨 5남매를 인터뷰해서 각자 그리워하는 아버지의 음식을 알아냈다.
큰딸 강현숙 – 겉은 차갑고 속은 따뜻하게 요리해준 수육
작은딸 강민숙 – 경로당 주방에서 만들어준 오리주물럭
큰아들 강기옥 – 만경강 하구에서 직접 잡아 떠준 전어회
막내딸 강현옥 – 봄에 시래기 넣고 고아준 붕어찜
막내아들 강성옥 – 한여름에 육수 내서 해준 냉면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도 꼬추 떨어질 일이 없다.”는 아버지를 보고 자란 강성옥 씨는 결혼하고 주방 일을 도맡았다. 고등학교 3년간 식구들의 저녁밥을 차린 우리 큰아이 강제규는 글로벌조리학과로 진학했다. 119안전센터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할 때도, 주방 이모가 안 오시는 날에 소방관들에게 ‘특식’을 차려주었다.
편집자는 옳았다. <남편의 레시피> 1장에 ‘시대보다 앞서서 요리’했던 아버지와 코로나 백신 맞아서 열이 안 떨어져도 엄마와 동생의 밥상 차리는 큰애 이야기를 채워 넣었더니 처자식 위해서 정성껏 끼니를 준비하는 강성옥 씨 이야기에 설득력이 생겼다. 증량한 원고를 검토한 사계절 출판사 이혜정 부장님도 궁금증이 풀렸다고 했다.
서른 살 되기 전에 결혼한 강성옥 씨는 삼겹살, 콩나물, 두부, 새우 같은 흔한 식재료로 집밥을 해왔다. 터울을 길게 두고 태어난 두 아들의 이유식을 만들고, 소풍 김밥을 싸고, 제철 음식을 해 먹였다. 투잡 뛰는 사람처럼 바쁜 강성옥 씨가 퇴근하고 집에 잠깐 들러 밥상을 차리는 건 식구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한 자기만의 방식이었다.
저녁마다 우리 아파트 주차장에서는 강성옥 씨의 동료나 지인들이 모임에 같이 가려고 기다리곤 했다. 그중 한 사람은 강성옥 씨의 고등학교 후배 허종한 씨. 결혼 19년 차인 그는 세 아들의 아빠다. 퇴근 시간이 빠른 편이라서 아이들과 함께 소파에 앉아 아내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일 마치고 온 허종한 씨의 아내는 앤서니 브라운의 『돼지책』에 나오는 아내처럼 부랴부랴 밥을 지었다.
‘나도 밥 한번 해볼까?’ 어느 날 갑자기 허종한 씨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렸다. 난생처음 혼자 마트에서 장을 봐 유튜브 보고 김치찌개를 끓였다. 아내와 세 아들의 추앙을 받으며 요리를 하나씩 섭렵하는 사이에 해는 바뀌었다. 요즘 가장 자신 있는 요리는 닭곰탕, 메신저로 보내온 사진에 허종한 씨의 또 다른 자신감이 담겨 있었다.
“김치까지 담가봤어요. 손맛 나라고 맨손으로 담가서 그런지 성공적이고요…. 하하.”
허종한 씨의 세 아들은 엄마가 해주는 담백한 음식보다 화려하고 간도 센 아빠의 유튜브 식 요리에 열광한다. 아빠가 해주는 음식 중에 최고로 치는 건 제육볶음. 아이들은 자기들이 게임 아이템을 구매하듯 아빠가 웍과 프라이팬 사는 것을 재미있게 여긴다. 예전처럼 밥 먹고 나서 각자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엄마 아빠 쉬라면서 설거지할 때도 있다.
‘밥하며 열심히 사는 남자’로 변신한 허종한 씨의 소식은 끊이지 않았다. 각종 고기 요리와 밑반찬, 거기에 대성공한 ‘설렁탕집 깍두기’ 는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20세기만 해도 요리하는 남자는 가정불화의 단초였다. 우리 집에서 강성옥 씨가 차려준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잘 놀았던 친구들은 돌아가는 차 안에서 부부싸움을 했다. 시대가 바뀐 덕분에 식구들 밥을 책임지는 사람이 남성이어도 공감받는다.
<남편의 레시피> 출간을 앞둔 어느 아침, 제습 기능을 자동설정하고 오는 가을 덕분에 거실과 주방 창으로 드나드는 바람이 눅눅하지 않았다. 둘째 아이의 스마트폰 알람이 울리는 시간은 오전 7시 30분. 소리를 감지 못하는 아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촉감이 빠를 것 같아서 나는 아이를 살살 흔들었다. 둘째 아이는 ‘5분만 찬스’를 한 번 쓰고서 욕실로 갔다.
평소대로 강성옥 씨는 주방에서 순두부찌개를 끓이며 박대를 굽고 있었다. 가스 불을 끈 그는 안방으로 가서 바지를 입고 나왔다. 밥상을 차리고는 안방 욕실로 가서 머리를 깔끔하게 정돈하고 셔츠를 입고 나왔다. 나는 샤워하고 나온 둘째 아이가 교복을 빨리 입게 거들었다. 오전 8시 3분. 아침밥을 먹지 않는 두 사람은 직장과 학교로 갔다.
“배지영! 나 가스 불 안 끄고 온 것 같아!”
오전 8시 36분. 이웃 도시로 출근하는 강성옥씨는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리다가 갑자기 생각난 모양이었다. 집 밖에서만 나타난다는 증상,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가스 불 안 끈 것 같어.”였다. 첫 해외여행에 들떠 있던 친구 어머니는 공항 가는 길에 발병했다고 한다. 완쾌된 듯하다가도 도진다는 그 병을 강성옥 씨도 뛰어넘을 수 없었다.
<남편의 레시피>를 읽은 독자들이 궁금하게 여긴 양파전. 사진 위의 양파전을 상상하지만 사진 아래 양파전이 맞다. 비주얼은 별로지만 맛은 최고. 심플 이즈 더 베스트!
음식에는 그리움의 맛이 포함되어 있다. 푸짐하게 한 상 차려주던 엄마, 그리고 함께 둘러앉아 먹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음식 이야기는 읽는 사람을 주방으로 데려가서 뭐라도 만들게 한다. <남편의 레시피>를 읽은 독자들이 은근히 궁금해한 레시피는 곁가지로 나오는 양파전. 사계절 출판사 이혜정 부장님도 퇴근하고 해봐야겠다며 구체적으로 질문한 적 있다.
“작가님, 양파전 어떻게 부치는 거예요? 처음 원고 읽을 때부터 저 양파전은 무얼까, 양파를 동그랗게 잘라서 그 안에 참치와 야채 등 각종 무엇을 넣고 계란물에 부쳐야 맛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더랬어요.”
‘심플 이즈 더 베스트’에 꼭 들어맞는 음식이 양파전이다. 늘 속도감 있게 요리하는 강성옥 씨는 옆에서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는 걸 싫어한다. 양파전은 순식간에 하는 거라서 쫓겨나기 전에 확실하게 목격했다. 양파를 채 썬다. 소금 간을 한 달걀물에 넣고 프라이팬에 부친다. 끝! 편의점 김밥이나 햄버거만 좋다고 하는 청소년들도 양파전에 밥 두 그릇을 먹는다.
남편은 아침에 일어나면 주방으로 간다. 국을 끓이고 반찬 한두 가지를 하고 밥상을 차리고 출근한다. 퇴근하면 역시 주방으로 간다. 왜 그렇게 밥을 하냐니까 그냥 한단다. 그래서 나는 차려주는 밥의 위대함을 어떻게든 기록하고 싶었다. 결혼 26년 만에 <남편의 레시피>를 펴내 기쁘다. 덕분에 나와 아이들은 힘들고 응어리진 일도 먹다 보면 누그러든다는 것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