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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지영 May 14. 2023

무망

‘이거 해서 뭐해?’

때때로 무망 상태에 갇힌다. 부은 얼굴이 며칠이고 가라앉지 않을 때 무망의 힘은 더 세진다.


우리 집 중2님이 미취학 아동일 때, 옆 단지 아파트 놀이터에 가서 친구들한테 과자 나눠주는 걸 너무 좋아했다. 아이들은 그거 다 먹고서 저희끼리만 논다며 돌보미 선생님이 나한테 귀띔해 주셨다. 그래서 어느 날은 그러면 왜 안 되는지 이야기 했더랬다.


“선규야, 놀이터에 과자 갖고 다니는 거 좋아?”

“응.”

“매일 과자 갖고 놀이터 가잖아. 그러면 친구들한테 너는 ‘과자 들고 오는 애’야. 그냥 강선규 되려면, 그냥 가서 놀아야 해.”

“그럼 시후(위층 사는 친구)는?”

“시후는 우리 집 비밀번호(속옷만 입고 서로 왔다리 갔다리) 알잖아. 형한테 하는 것처럼 시후한테는 똑같이 해도 돼. 엄마도 맛있는 거 생기면 시후네 갖다 주니까.”

“근데 엄마, 왜 놀이터에는 과자 가져가면 안 돼?”


아이는 천천히 알아갔다. 초등학생 되고 친구들이랑 뭐 사 먹거나 돈 드는 데 놀러 가면 엔빵했다. 하지만 중학생이 된 지금도 시후랑은 정확하게 계산하지 않는 것 같다. 시후도 그런다.


이거 해서 뭐해?

지난주에는 모든 일에서 그랬다. 더구나 한길문고 플리 마켓은 토요일, 왜 간다고 했을까. 무르고 싶었다. 이것저것 준비하며 <나는 진정한 열 살> 175권 인세를 쓴 것도 정상 아닌 것 같았다. 그냥 배지영 아니고, ‘자기 책을 자기 돈으로 사서 선물로 갖고 다니는 멍청이’처럼 느껴졌다.


일주일 전에 한길문고에서 책을 구입한 당진 김은미 선생님이 플리 마켓 소식 듣고 또 군산 방문한다고 해서 오지 말라고 했다. 나도 짧게 참여하고 영광 엄마 얼굴이나 보고 와야겠다고 결심했으니까.


“어? 여기 왜 왔어요?”

일부러 찾아온 분들 덕분에 나를 감싸고 있던 무망은 질질 흘러내렸다. 단지, 작가가 플리 마켓에 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녀들에게 책을 사준 젊은 부모들에게 감사했다. 강연회에서 만난 적 있다며 알은체하는 청소년 독자들의 해맑은 모습도 반가웠다. 처음 만났는데도, “지금 저 다단계하는 거예요.”하면서 책 살 사람을 자꾸 데려오는 분에게 감동했다. 수산리 아버지 팔순 잔치 때 댄스 실력을 보여줬던 조카의 친구들까지 만났다. 브런치에서 글 잘 읽고 있다고 해주신 분도 기억합니다.

만화 <흔한 남매> <마법천자문> 구입한 어린이 독자들에게도 내가 준비한 ‘꽝 없는 뽑기’를 하라고 했다. 귀여워서 두 번씩 기회 주고서는 10초도 안 되어서 ‘1등 나오면 어쩌지?’ 괴로워했다. 오, 예!!! 하느님 부처님 고맙습니다. 1등(1명), 2등(2명), 3등(5명)은 내 책 구입한 분들이 뽑혔다. 행운을 거머쥔 것처럼 나도 막 환호했다. 히히. 이거 해서 뭐하긴? 재밌잖아.  


끝나고 ‘행복한 치과’ 박종대 원장님이 사주는 맥주를 마실 뻔했다. 문지영 언니랑 김우섭 점장님이 바쁘대서 그냥 왔다. 집에서 캔 맥주 긴 거 하나 마셨다. 강성옥 씨가 자기 올 때까지 두라고 한, 쌓여 있는 그릇을 식기세척기에 돌렸다.


오늘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책 읽고 순환치료 받으러 갔다. 얼굴은 여전히 부어 있지만, 좁고 뻑뻑하던 마음에는 유수분이 골고루 스며있다.



#군산한길문고

#행복한치과

#나는진정한열살

#내꿈은조퇴

#쓰는사람이되고싶다면

#남편의레시피

#소년의레시피

#대한민국도슨트군산

#나는언제나당신들의지영이

#책나물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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