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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지영 May 27. 2023

오늘의 사인

한길문고 재현 과장님이 군산 자몽에서 사인본 주문 들어왔다고 했다. “빨랑 갈게요. 1시간 안에요.”라고 말한 사람도 나였고, 전화 끊고 그대로 누워있는 사람도 나였다.


집에서 서점까지 걸어가면 981미터. 차로 가면 1,200미터.

과연 나는?


차를 끌고 갔다. 서점 주변에 주차할 빈자리 따위는 없었다. 한길문고 건너편의 골목을 한 바퀴 돈 다음에야 차를 세울 수 있었다. 걷는 게 지구 환경에도 좋고 결과적으로 시간도 아끼는 거지만, 알면서도 안 되는 날이 오늘이었다.


늘 사인하는 자리에서 <소년의 레시피> 11권을 쌓았다. 돌탑에 머리를 조아리고 자란 시골 출신이라서 책 탑에 대고 저절로 두 손을 모았다. 책을 받은 청소년들이 조금이라도 기뻐할 수 있게 정성 들여서 사인했다.


멀쩡하게 차려입고 노트북까지 챙겨 나간 건 밖에서 일하겠다는 각오를 했다는 뜻. 그런데 나는 누워있고 싶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소년의 레시피>를 폈다가 127쪽에서 멈췄다.


“아빠는 대학생이었을 때부터 멋있었네요. 엄마 자취방에 중고 냉장고 샀을 때 김치 담가줬다면서요?”

“응, 근데 요리 잘해야 멋있는 거냐? 엄마한테는 뭐 그런 격찬 같은 거 없어?”

“엄마도 나름대로의 멋짐이 있겠지요. (웃음) 내가 아직 몰라서 문제지만요.”


고등학교 1학년 정도 되면 사춘기 끝나고 사리 분별 잘하는 때인데 강제규 학생은 왜 어머니의 멋짐을 하나도 몰랐던 거야? 여전히 어머니의 근사함을 발견 못 했을까 봐 차마 물어볼 수도 없고. 분하다. ㅋㅋㅋㅋㅋㅋ


#군산한길문고

#군산자몽

#사인본

#소년의레시피

#소방관들을위한특별한한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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