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의 친필사인을 들여다보면서 정말 얼떨떨했다. 길상효 작가님과 헤어지고 나서야 오한이 들었다. 아니 저를 어떻게 알고 오신 건가요.
모르는 게 많고, 안 읽어본 책도 많은 나는 그해 여름부터 길상효 작가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러저러한 경로로 작가님 메일 주소를 알아냈고, 지금은 가끔씩 카톡도 합니다.ㅋㅋㅋㅋㅋㅋ
<병아리 붓은 억울해>는 비룡소 문학상 받은 <깊은 밤 필통 안에서>의 세 번째 이야기다. 연필들이 자기 주인인 박담 어린이를 디스부터 하는 게 재밌다. ‘그런’ 어린이의 연필로 사는 고단한 삶이 너무나 와닿는다. 리얼리즘의 자기장 안에 머물러 있는 나 같은 사람도 바로 빠져든다.
어제 아침에 세 권을 나란히 세워두고 읽다가 연필 주인 박담 어린이에게 빠지고 말았다. ‘그래도 즐거운 하루였다.’로 일기를 마무리하고, 공부는 잘 하지 않고, 책가방도 닥쳐서 싸고 그러는데 자기 필통은 엄청나게 잘 챙긴다. 물건은 주인 닮는다고, 자기 물건을 잘 챙기는 야무진 박담 어린이를 닮은 연필들이 자기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낸 거다.
책을 다 읽고 내 필통(작년 3월에 둘째아드님이 안 쓴다고 버림)에 들어있는 거를 사진으로 찍어봤다. 나는 ‘샤프 두 개 병’이 있다. 어릴 때부터 앓던 불치병이다. 그밖의 필기구도 자꾸 잃어버려서 두세 달에 한 번씩 똑같은 걸로 다시 사곤 했는데 이번에는 오래 간다. 나도 많이 야무져졌다. 이게 다 <깊은 밤 필통 안에서>를 읽은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