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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과 '어떤' 식재료

by 배지영

지난봄에는 다이어트를 했다. 다이어터들에게 온다는 요요현상을 나는 겪지 않았다. 이게 다 강성옥 씨 때문이다. 일어나자마자 주방으로 가는 이 아저씨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아침저녁으로 아름다운 샐러드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밥과 나물과 고기와 생선이 있는 밥상을 바로 들이밀었다. 아니 쫌! 코스요리가 아니잖아!


거의 한 달간 그 난리를 친 건 이화여대 로스쿨 서을오 교수님의 메일 덕분이었다. <남편의 레시피>를 읽고 큰 감동을 받은 교수님은 ‘광화문 북클럽’ 에 나를 초대하셨다. ‘북클럽 회원 + 서을오 교수님의 수업을 받는 학생 수십 명’을 줌으로 만났다. 물론 살은 100그램도 빠지지 않은 채로.ㅋㅋㅋㅋㅋ


서을오 교수님은 그날의 영상편집본과 참여했던 학생들의 소감을 하나하나 정리해서 보내주셨다. 일로 만난 사이니까 원래는 그쯤에서 연락이 자연스럽게 끊기는데 그러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소방관들을 위한 특별한 한 끼>를 서을오 교수님께 보낼 수 있었다.


다음 편지는 <소방관들을 위한 특별한 한 끼>를 읽고 쓰신 서을오 교수님의 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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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규님께.

우선 귀한 책을 저자의 서명까지 넣어서 보내주신 점에 대해 감사드려요. 인사가 늦은 것은, 책을 다 읽고 소감을 겸해서 연락드리고 싶어서였습니다.

제 느낌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직접 쓰신('소년의 레시피'는 어머니가 쓰셨으니까요) 첫 번째 책인데도 불구하고 '너무나 훌륭하다'입니다.


우선, 책 속에 담겨 있는 이야기 자체가 감동적입니다. 저자가 사회복무요원으로서 소방관, 안전센터 '반장'의 역할을 훌륭하게 했고, 항상 위험 속에서 일하시는 소방관들을 열심히 돕고, 요리하고, 분투하는 과정이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소방관과 구급요원 분들의 업무 자체가 존경받아야 마땅하지만, 굳이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이 책을 읽다 보면 저절로 존경심이 생기게 됩니다.


둘째, 글을 참 잘 쓰셨습니다. 저는 이렇게 간결하고 담백하게 쓰는 글을 참 좋아합니다. 군더더기가 없이, 자신의 진심만을 담아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확하게 잘했습니다. 마치 알리오 올리오 스파게티 같다고나 할까요.


셋째, 책 속에 등장하는 요리들이 마치 살아 숨 쉬는 것 같습니다. 요리의 과정, 요리 방법이 안전센터의 숨가쁘게 돌아가는 업무와 어울어져서, 소방관을 위한 새로운 요리들이 탄생했습니다. 힘든 소방관들을 위해서 5만 원이라는 예산을 가지고 분투하는 요리사의 마음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아직 제규님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블로그를 통해서 사진을 보았고, 어머님의 책들과 이 책을 통해서 이미 많이 가까워진 느낌입니다. 언젠가, 가능하다면 가까운 미래에, 군산에서든 서울에서든, 제규님께서 요리를 하셔도 좋고, 아니면 함께 어떤 식당에 가도 좋고, 같이 맛있는 한끼를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고대하겠습니다. 언젠가 제규님이 오너셰프로서 요리를 해 주시는, 제규님의 조그마한 식당에서라면 더욱 좋겠지요.


좋은 책 선물을 주신 데 대한 조그마한 감사의 표시로, '어떤' 식재료를 보냅니다. 부디 신선할 때 온 가족이 함께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손질과 요리는 제규님 아니면 아버님께서 완벽하게 해 주시겠지요. 그럼 또 뵙기로 하면서

서을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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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에 서을오 교수님이 보내신 ‘어떤’ 식재료가 도착했다. 전복 두 상자!!! 요리를 즐겨하시는 서을오 교수님도 ‘전라도 엄마 병’ ‘손 큰 병’이 있는 게 분명하다.


#남편의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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