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마친 강연은 서로의 호감을 확인한 기분. 날아갈 것 같다. 강연 잘 안 되면? 차인 기분이지요.
오늘 강연은 망했다.
소영 미숙 서희와 밥 먹으면서 이야기 나누고, 르클래식에서 강제규 님이 만든 카페라떼와 소금빵 먹고도 집에 오자마자 고꾸라졌다. 카더가든의 ‘휴게소’ 열 번쯤 들으니까 방전된 마음이 저속으로 충전되는 듯했다.
“엄마, 아무것도 안 먹었죠? 이거 되게 유명한 데 샐러드야.”
식구들 생일과 명절 때만 들르는 강제규 님이 퇴근하고 집에 왔다. 아들이 사 온 음식을 먹고 세탁기를 돌리고 중2님을 환하게 맞아주었다. 그런데 일과를 다 마치고 누웠는데 헛헛했다. 먹어서 위를 채우고 싶은 게 아니라 읽어서 마음을 몰랑몰랑하게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얼마 전에 군산 다녀간 서울시민 k님과 나는 ‘인터넷에서 만난 친구’다.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에 나오는 ‘흔’ 은 김혼비 작가님과 ‘인터넷에서 만난 친구’다.
김혼비 작가님을 흠모하는 k님과 나는 그날 군산의 어느 횟집에 있었다. 바다로 지는 노을을 보다가 맥락 없이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김혼비 작가님이 쓴 장례식장 화환 얘기 너무 다정하지 않아요?”라고 했다. 친구 흔의 아버지 장례식장에 화환이 없는 게 마음 쓰인 김혼비 작가님은 새벽 1시 40분경에 화환 6개를 주문한다.
①사랑하는 흔의 친구+혼비 작가님 본명
②혼비 작가님 회사 이름+대표 이름
③제철소 출판사+대표 김태형
④다정상사+혼비 작가님 영어 이름
⑤우호공방+대표 김혼비
⑥전국축제연구회+대표 박태하
장례식이 끝나고 혼비 작가님은 흔의 어머니에게 ‘포교 잘할 인상’이라는 명예로운 칭찬을 받는다(읽을 때마다 흐느끼듯 큭큭큭큭). 그다음에 이어지는 “타인과 자신에게 좀 더 다정하고 유연하자”는 문장. 망한 기분이 사그라든다.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