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에는 상태 좋았다. 아래층 사는 이웃(이지연 선생님, 군산간호대 교수, ‘애들은 뛰어야 정상'이라는 철학을 갖고 계심)이 나보고 머리 자르니까 10년은 더 젊어 보인다(그렇습니다. 50대부터는 10년씩 깎아 줘야지요ㅋㅋㅋ)고 했다.
근데 내가 ‘몬낸이 병’ 있다. 피곤하면 붓고 고속도로 운전하면 더 붓는다. 어제는 당진시립중앙도서관에서 글쓰기 수업하는 날. 군산으로 돌아올 때 첫 번째로 만나는 서산 휴게소에 들렀다. 누워서 책 읽다가 자고 일어났더니 진짜 심한 몬낸이가 되어 있는 거다.
그럴 때는 집 가서 샤워하고 눕는 게 상책. 하지만 인물, 사건, 배경을 늘 고민하는 요즘, 보물 두 점이 뒤뜰에 있는 발산초등학교에 갔다.
“시마타니는 발산에서 영원히 살 줄 알고 약탈하거나 헐값에 가져온 석불, 석탑, 부도 등을 뜰에 세워두고 감상했다. 일제가 패망하고 군산에 살던 일본인들이 자국으로 돌아갈 때 시마타니는 한국인으로 귀화를 해서라도 움켜쥔 땅과 보물을 놓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해방의 급류는 시마타니를 단박에 쓸어내 버렸다. 그는 어느 것 하나 챙기지 못하고 돌아갔다.
발산초등학교에 있는 오층석탑은 보물 제276호이다. 원래 완주 봉림사 터에 있던 것을 시마타니가 소달구지에 실어서 가져왔다. 고려 시대에 만들었고, 받침돌은 신라의 석탑을 본떴다. 또 발산초등학교 석등은 보물 제234호이다. 간주석에 용이 새겨진 석등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며, 더구나 그 안의 용은 개구지게 웃고 있다. 이 아름다운 유산들이 초등학교 뒤뜰에 서 있는 건 군산이 가진 수탈의 흉터 중 일부다.” -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 21세기북스, 배지영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글 속의 인물들이 발산초등학교 뒤뜰에서 무얼 할까나. 먼저 잘생긴 석탑과 석등을 보며 불두화꽃 나무를 지나쳐 가겠지. 그리고는 새 소리에 지지 않고 대들 듯이 앵앵거리는 벌 소리를 듣겠지.
벌은 토끼풀꽃에 드글드글하게 있었다. 어릴 때는 머리통이 뜨거운 한여름에 봉숭아나 채송화 꽃에 앉은 벌을 잡았던 기억이 있는데, 5월에도 벌이 많네. 마음먹으면 다섯 마리쯤은 잡겠지만, 그냥 네잎클로버를 찾았다(기념으로 복권 사고 당첨 되어가지고 작업실로 쓸 번영 주택 사야지). 쪼그려 앉은 채로 자리를 옮겨다니며 눈이 빠지게 들여다봤어도 네잎클로버는 없었다.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 버렸다. 꽃시계 두 개를 만들어서 차고 천천히 걸어 나왔다. 백미러로 얼굴을 보니 기적처럼 몬낸이 얼굴은 사라졌더라, 는 희망 사항일 뿐. 나는 여전히 몬낸이 그 자체였다.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