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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안내자 옥돌 Feb 07. 2024

네가 글을 썼으면 좋겠다. (feat. 아빠의 편지)

아빠, 나 이제 브런치 작가야.

스무 살이 되던 해, 아빠의 손편지를 받았다.

아마, 유치원에서 부모님의 편지 읽어주기 프로그램에서 받았던 것을 제외하면 스무 살에 받은 편지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고등학생 때인가, 엘레베이터에서 아빠한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 영어 선생님은 생일 때마다 자식들한테 편지를 써준대. 되게 멋있지 않아? 나도 손편지 받고 싶은데.”

개딸은 자기가 먼저 편지 쓸 생각은 못하고 저런 말이나 뱉어댔던 것이다.

고등학교 3년을 마치고,

대학 합격 후 서울로 올라가기 전쯤 부모님께 편지를 한 통 썼던 것 같다.

무슨 내용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지금의 모습으로 키워주셔서 감사하다는 내용이었겠지..?)

아빠의 편지에 따르면

그에 대한 ‘늦은 답장’이란다.


서울 집의 이삿짐을 정리하면서 오래도록 찾고 있던 유물 편지를 발견했다. 6년 전 1월에 몇 장 끄적이다 만 다이어리 속에 끼워져 있더라. 휴우. 이걸 펼쳐보지 않고서 버렸다면 어쩔 뻔 했나 ~

편지의 전문을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줄곧 머릿 속을 떠나지 않는 한 문장이 있었다.


네가 글을 썼으면 좋겠다.


아빠가 입버릇처럼 꺼내는 에피소드가 있다.

“네가 7살 때인가.

제삿상에 올라간 대추를 보고 뭐라고 썼는지 아나?

‘매끌매끌한 그릇 위에 올라가 영혼들의 밥이 되었습니다.’ ​라는 표현을 쓰더라.


참 어릴 때부터 표현이 남달랐다.”

어릴 적부터 글 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성에 차는 글을 만들어내기 위해 글을 잡고 분투하는 시간만큼은 주위를 둘러보지 못할 정도로 머리를 싸맸지만, 일기장이나 독후감처럼 글을 써야 하는 과제는 일도 아니었다. 정도를 걷는 모범생은 아니었던지라, 안 읽은 책도 읽은 척하는 교활한 글쓰기 스킬도 장착했다.

집에 있는 날이면, 엄마는 어린 나와 동생의 손을 잡고 마을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마음껏 원하는 책을 집어다가 읽을 수 있게 풀어두셨고, 귀갓길에는 늘 여덟 권의 책을 빌려 양손 무겁게 집으로 향했다.

-

학창시절에도 도서관에서 시간을 자주 보냈다.

콩알만할 때부터 나는 어딘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주변 애들을 보며 ‘수준이 안 맞다’고 생각했다.(아주 교만했다.)

내 생각이 향하는 곳은 항시 또래들과 달랐고, 그럴 바에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설 수 있는 도서관을 찾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

주말이면, 부모님은 지역 곳곳의 백일장을 찾아 나를 데리고 가셨다.

나에게는 백일장이 부모님과 함께 떠나는 ‘소풍’ 같았다.

초록이 우거진 곳에서 돗자리를 깔고 오늘의 주제가 발표되기를 기다렸다가, 커다란 종이를 받아 내 이야기를 써내리는 시간.

한 장, 두 장, 빼곡히 채워 심사 부스에 제출하는 순간은 또 얼마나 짜릿하던지.

그리고 당일, 또는 며칠 후 학교로 날아오는 수 개의 상장들을 받으며 친구들 앞에서 괜히 으쓱한 기분도 들었다.

-

한 번은, 아빠와 둘이서 백일장에 간 날이었다.

아빠도 글을 쓰겠다며 원고지 두 세트를 받아와 마주 앉아 각자의 글을 썼다.

그때였던가,

‘글은 어떻게 써야 하냐’고 아빠에게 물었다.

 

“글의 핵심은 에피소드야.”

덕분에 나에게는 아빠와 함께한 백일장의 에피소드가 남았다.


너는 표현이 좋고 글 쓰는 재주가 있다.
늘 조금만 갈고 닦으면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겠다.


그때는 작가가 무슨 직업이 될 수 있을까 싶었다.

어느 시점이 되면 나도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야 할 테고, 글은 취미로만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의 나는 뭘 하면서 살아가야 할지, 대학생활 동안 무엇을 목표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 굉장한 고뇌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도 also,, 모르겠다 ~~ 직장 밖에서 뭐 해먹고 살아야 해? 나 혹시 평생 사춘기?)

그리고 매일 블로그와 브런치로 기록을 남기는 요즘.

사람들이 내 글은 술술 읽힌대. 막 공감되고 재밌대. 다음 편이 궁금하대.

나를 쓰는 사람으로 길러줘서 고마워 아빠, 엄마.

올해는 꼭 출판을 할 거야. 우리 딸 작가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K-장녀 기질 어디 안 간다...)



아빠, 나 정말 대단한 걸 하지 않아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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