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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케이키 Okeiki Oct 22. 2024

#2. 남편의 자존심과 시험관

오케이키 난임일기 - 설국의 난임일기

난임 진단을 받고 첫 시험관을 하기까지 3개월이 걸렸다.  

막상 시험관 과정에 돌입하려는데 의외의 복병이 나타났다.  

그 정체는 다름 아닌 남편이었다. 


남편은 내 최고의 단짝이다. 가치관이 비슷하고 지향하는 삶의 방향성도 같을뿐더러 재밌는 장면이 나오면 동시에 웃는다. 연애 때도 결혼 후에도 대화가 잘 통했다. 우린 참  맞는 짝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시험관을 하기 전까지 말이다. 


유독 시험관에서만큼은 타협과 양보를 찾기 어려웠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시술을 받길 원했고, 남편은 최후의 보루로 남겨놓길 요구했다. 여러 차례 가족회의를 반복했지지만 팽팽한 기싸움이 계속되었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집안에 냉랭한 기운이 번졌다.


남편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대신 3개월이라는 조건을 걸었다. 남편이 원하는 대로 자연임신을 시도해 보고 그래도 안 되면, 내 뜻에 따르기로 결정했다. 야속하게도 약속한 기간은 금세 달음질쳤고, 나 역시 내심 기다리던 소식은 없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렇게 우리는 시험관 시술을 시작할 수 있었다. 


시술을 결정하고서도 한동안 남편은 시큰둥했다. 혹시라도 남편 심기를 건드려 그만하자는 말이 나올까 봐, 주사를 맞을 때도 씩씩한 척했고 시술실에 들어가면서도 괜찮은 척했다. 어르고 달래 가며 출근할 때 쥐어준 영양제를 먹지 않고, 도로 집에 가지고 왔을 때도 화내지 않았다. 채취일에 도망가지 않고, 함께 병원에 가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 이 정도로도 남편의 역할은 충분하다고, 위안 삼았다. 둘이 있는데도, 혼자서 적과 싸우고 있는 것 같았다.


남편은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뭐가 됐든 겁 없이 덤비고,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아님 말고 하는 식으로 미련을 두지 않는다. 쓸데없는 걱정으로 골몰하곤 하는 내게 제동을 걸고 버팀목이 되어준다. 싫어하는 곱창이나 추어탕을 먹으라고 할 때를 제외하고는 그는 대체로 내게 맞춰주고, 내가 좋아하는 건 덩달아 좋아한다. 


그런데 시험관에서만큼은 달랐다. 객관적인 수치와 의학적 소견은 일관되게 시험관을 가리켰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상황을 이해시켜 봐도, 남편의 의지는 굳건했다. 임신은 자연적인 방법으로 시도하는 게 옳다고 버텼다. 화를 낼 수도 없고 부드럽게 타이르자니 내 속이 터지는 대략 난감한 상황. 나도 나지만 본인 쪽에도 원인이 있는데, 순순히 협조하지 않는 남편에게 서운했다. 그러나 어쩌랴. 아이는 나 혼자 갖고 싶다고 가져지는 게 아닌 것을.


돌이켜보면 당시 남편은 자존심을 부리고 있었다. 괴로워하고 있었다. 시험관 시술이라는 인위적인 방식이 생명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건, 일종의 핑계였다. 아이를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쓸려,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던 거다. 


상대적으로 나는 마음 정리가 빨랐다. 난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고 해야 할 일에 충실하려고 했다. 반면 남편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인정할 수도 없었다.


추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심리학적으로 남성의 생식 능력은 남성의 정체성 그리고 자존감과 관련이 높다고 한다. 


남자는 문지방을 넘을 힘만 있어도 남자라는 옛 말처럼, 남성은 늙어서도 생식 능력이 유지된다. (여성과 다른 점. 참으로 불공평하다.) 그런데 아직 한창 나이에 아이를 가질 수 없거나 가지기 어렵다는 건, 남성으로서 자기 존재감이 무너지는 걸 의미한다. 쉽게 표현하자면 남편은 자신이 ‘남성으로서 실패했다’고 여겼다. 남편도 마음이 꺾이고, 약해질 수 있다는 걸. 남편에게도 배려와 응원이 필요하다는 걸. 그때의 나는 헤아리지 못했다. 그렇게 1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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