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이키 난임일기 - 설국의 난임일기
산부인과에는 일명 ‘굴욕의자’로 불리는 다리걸이가 있는 진료대가 있다. 다리를 벌리고 누워 있는 자세가 굴욕적이라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아무리 상대가 의사라 할지라도 타인 앞에서 그런 자세를 한다는 게 여간 민망한 일이 아니다. 그만큼 시험관 시술을 위해 병원을 찾는 여성들은 산부인과 진료대에 오르는 일을 썩 유쾌하게 여기지 않는다.
남편도 마찬가지다. 특수한 목적으로 조성된 작은 방에서 쫓기듯 목표를 향하는 자신의 모습은 혼자지만 부끄럽다고 했다. 자신과 아내를 골고루 빼닮은 아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사랑이 배제된 부자연스러운 방식은 불편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시험관 1차를 통과하며 구체적인 상황은 달랐지만 우리 두 사람의 속내는 별다르지 않았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남편도 상처받았다. 아팠다. 더 깊이 이야기를 나누고, 더 가까이에서 상대를 들여다봤어야 했다. 지금은 당연하게 이해하고 있는 남편의 마음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서로 의지하며 한결 부드럽게 그 시기를 통과했을 거란 아쉬움이 든다.
지금의 나는 앞에 언급한 상황들 모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모든 진료 환경과 과정은 시험관에 최적화된 의료 환경일 뿐 나를 겁주고 불안하게 하려고 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시험관 과정에선 부부가 함께 힘을 냈으면 좋겠다. 각자가 지닌 감정들을 솔직하게 터놓고 대화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줄이거나 피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 차수 로또의 희망을 갖고 시작했던 시험관은 임신 수치 4점대로 종결됐다. 채취를 하고 3일 뒤에 배아 3개를 이식했었다. 배아를 냉동하지 않아서 신선이식에 해당했고, 채취 당일 수정시킨 배아를 3일간 키워 3일 배양 배아 이식이 이뤄졌다. 이식했던 배아 중 하나라도 착상 시도를 했던 걸까. 주치의는 배아가 자궁 내막에 붙긴 했지만 파고들지 못하고 흘러내린 경우라고 설명했다. 정식 명칭은 아니지만 이런 경우를 화학적 유산이라고들 부른다.
의학적으로 한 자릿수 임신 수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흥분했다. 배아가 자리를 잡으려고 했다. 우리에게 오려고 했다. 특히 남편은 그토록 꺼리던 시험관을 통해 우리 사이에 생명이 움틀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했다.
‘아직도 우리가 시험관을 하지 않고도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믿어?’
몇 년의 시간이 흘러 남편에게 종종 묻는다. 여전히 그렇다고 답한다.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남자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시험관에 매우 적극적이라는 점이다. 나보다 그 정도가 심할 때도 있다. 체중 관리를 하고 영양제를 먹고, 진료 때에는 담당 선생님에게 남편이 할 수 있는 일을 질문한다. ‘우리의 아이’를 위해서 같이 노력하겠다고 다짐한다.
지난 차수에 실패했으면서도 새로 들어가는 차수마다 잘 될 것 같다고, 밑도 끝도 없이 긍정적인 기운을 내뿜는 다. 남편의 2세 계획에는 자연임신과 마찬가지로 시험관이라는 선택지가 추가되어 있다.
17번의 시험관 시술을 받는 동안, 여러 다른 사례들을 접했다. 시험관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됐다. 생명에 대한 시선도 바뀌었다. 이제 우리는 어떤 길이든 우리 아이가 걸어오는 길이 꽃길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자연임신도 시험관도 놓지 않고, 언젠가 올 아이에게 꾸준히 초대장을 보낸다. 그게 예비 엄마아빠로서 미래의 우리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