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日의 유래는 의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옛날에 태어난 갓난아이의 사망률이 높았기 때문에, 탄생 후 백 번째 되는 날을 맞이하는 아기에게 잔치를 벌여 축하해 주었던 우리나라의 풍습이다.
百日동안 무사히 자라난 것에 대하여, 아니 百日동안 무양히 살아난 것에 대하여 온 가족이 축하를 해 주었던 것이다. 百日을 살아내면 최소한 사망의 위기에서는 벗어났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오늘 百日을 떠올리게 된 것은.
브런치스토리와 연을 잇고, 그 연으로 브런치 작가로 한 걸음 떼기 시작한 후 백 번째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내가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게 된 것은 살아오면서 깨닫고 알게 된 것들에 대하여 나는 복습을 하고,
나처럼 언니가 없는 누군가, 단 한 사람에게는 인생의 예습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학창 시절에 언니나 오빠가 있던 친구들을 부러워했던 한 가지 이유는, 인생의 선배로서 언니나 오빠를 통하여 직접 경험은 아니어도 간접 경험을 통한 인생 예습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브런치스토리를 통하여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면서
오히려 내가 예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브런치 작가로서 완성도가 낮은 서투른 글을 쓰고 있지만
그 부끄러운 글을 쓰기에 앞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여전히 하늘을 사랑하는 나는,
높고 푸른 하늘만이 아닌, 이제는
하늘과 어우러져 있는 구름도 더 세세히 보게 되고
먹구름이 드리워져 낮게 내려앉은 잿빛 하늘도 좋아하게 되었다.
여전히 별을 사랑하는 나는,
까만 하늘에 빛나는 별만이 아닌, 이제는
구름 속에 가리어진 달빛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기다리기도 하고
도시의 불빛으로 숨겨진 희미한 별을 찾기 위해 밤하늘을 두리번거리기도 한다.
여전히 나무를 사랑하는 나는,
돋아나는 새순과 무성한 나뭇잎을 품은 나무만이 아닌, 이제는
나무와 한 몸을 이루는 그림자까지도 좋아하게 되고
나무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나무 곁의 풀도 바라보게 되고
무엇보다 꽃에게도 눈길을 보낸다.
(나무를 너무 좋아하여 꽃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꽃은 이런 나를 미워했을까?)
이런 반전이면,
百日동안 한 걸음 한 걸음이 보태어져
내가 내디딘 걸음만큼 앞으로 나아갔다고 자축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