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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언

by 시간나무

나의 영원한 전우와의 첫 만남 38주년이 되었다.


오늘, 나의 전우를 만나기 아주 오래전

여고시절 가장 좋아했던 시 【선언】이 떠오른다.




【 선 언 】

하인리히 하이네 (1797.12.13.~1856.02.17.)


어둠의 장막이 내려오면

바다는 더욱 광포해지다.

나 바닷가에 홀로 앉아서

춤추는 하얀 파도를 바라보고 있노라.

그리고 내 가슴 바다와 같이 부풀어 올라

깊은 향수가 내 마음을 사로잡도다.

정다운 모습아, 그대 위한 이 향수

그대는 어느 곳에서도 나를 사로잡고

어느 곳에서도 나를 부르도다.

그 어느 곳에서도, 그 어느 곳에서도......

바람 부는 소리에도, 파도치는 소리에도

나 자신의 가슴에서 나오는 한숨 속에서도


가느다란 갈대를 꺾어 나는 모래 위에 쓴다.

“아그네스 나, 그대를 사랑하노라고......”

그러나 심술궂은 물결이 밀려와

이 즐거운 마음의 고백을 그만, 힘도 안 들이고 지워 버렸노라.

연약한 갈대여, 힘없이 허물어지는 모래여,

흘러가 부서져 버리는 파도여!

나는 이미 그대들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하늘은 어두워지다.

내 마음은 황막해지다.


나 억센 손으로 저 노르웨이의 삼림에서

제일 높은 전나무를 뿌리 채 뽑아

그것을 에트나의 불타오르는

저 새빨간 분화구에 넣었다가

그 불이 붙은 거대한 붓으로

나 어두운 저 하늘을 바탕 삼아 쓰겠노라.

“아그네스 나, 그대를 사랑하노라고......”


그렇게 한다면, 밤이면 밤마다 저 하늘에

영원한 화염에 그 글자는 타고 있으리!

그리고 뒤이어 쉴 새 없이 출생하는 후예들은

환호를 울리면서 이 하늘의 문자를 읽으리라.

“아그네스 나, 그대를 사랑하노라고......”




이 시인과 처음 만나게 된 계기는 169년 전 나와 같은 날 탄생했기 때문이었다.

(본명은 크리스티안 요한 하인리히 하이네로 1797년 12월 13일 뒤셀도로프에 태어나,

1856년 2월 17일 파리에서 향년 58세의 나이로 떠났다.)

그리고, 이 시를 만났을 때 아마도 이런 사랑을 꿈꾸지 않았을까?

(시를 읽으며 상상을 하니 너무 황홀했었다. 아그네스 나, 그대를 사랑하노라고...... 정말 멋지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이나 작가 이름을 뜻하지 않게 만나면 설렘이 있다.

<데미안>에도 하이네 이름이 나온다. 그 이름을 보는 순간 마치 하이네를 만난 듯 반가웠다.

헤르만 헤세도 하인리히 하이네를 좋아했으리라. 그렇지. 나보다 먼저 아주 훨씬 먼저 좋아했겠구나.


"내가 이해하지 못할까봐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 싱클레어. 사람이 이렇게 저녁때 안개 속을 거닐면, 가을 생각에 젖어서 말이지, 그럼 시를 짓기도 하는 거지. 나도 알아, 물론 죽어가는 자연에 대해서지, 또 자연을 닮은 잃어버린 청춘에 대해서도. 하인리히 하이네를 봐."

"난 그렇게 감상적이지 않아." 내가 항의했다.

데미안(베아트리체)의 데미안과 싱클레어의 대화 中


(사진 출처 : Jinipa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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