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날아다니는 곤충을 보았다.
너무 작아 날갯짓이 어설퍼 보였지만, 나는 직감으로 잠자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계절은 아직도 폭염의 한여름 속에 머물고 있는데 '잠자리가 벌써?'라는 생각에 의아했다.
그런데, 오늘 출근길에서도 날아다니는 잠자리를 보았다.
오늘 만난 잠자리는 두 쌍의 투명한 날개가 또렷이 빛나는 어른 잠자리였다.
그 순간, 며칠 전 만났던 곤충이 아기 잠자리였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잠자리는 늦여름에서 가을초에 많이 나타나곤 한다.
지금은 가을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날씨는 절대 아니니 여름의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알려주는 듯하다.
조금만 참아내면 이 무더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보름 후면 입추이긴 하지만, 가을의 상징인 잠자리와의 이른 만남에서
뜨거운 태양은 피한다 하여도 이마에 맺히는 땀방울은 피할 수 없었던 여름의 나날들도
잘 견디어냈구나 하는 생각에 위안이 되었다.
초등학교 여름방학 숙제 중 일기와 함께 필수 숙제가 있었는데 바로 곤충 채집이었다.
지난해까지만 하여도 전혀 느끼지 못하였던 감정인데, 올해는 저 예쁜 잠자리를 잡기 위해 쫓아다녔던 그때가 떠오르며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잠자리는 모기, 파리, 진딧물 등 작은 곤충들을 잡아먹기 때문에 해충 퇴치에 유익한 존재로 잠자리가 많이 보이면 그만큼 해충도 줄어든다고 하였는데, 우리를 도와준 잠자리를 그렇게 여름방학 내내 수많은 어린아이들이 잡았으니 우리를 얼마나 원망했을까?
쉽게 볼 수 있었던 그때는 당연한 줄 알았는데,
보고 싶어도 보기 힘든 때에 살다 보니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뒤늦은 후회와 함께 아쉬움을 남긴다.
태양은 아침부터 이글거린다.
나는 출근을 위해 버스를 타고
지하철 환승을 위해 걸어간다.
내 발은 땅을 딛고 있고
내 눈은 양산 아래 드러난 하늘을 바라본다.
그 순간
작은 생명체의 힘찬 날갯짓에 시선이 멈춘다.
바로 잠자리였다.
어? 며칠 전 만난 잠자리는 아니겠지?
아! 그 잠자리의 엄마인가?
이유 없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왜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것일까?
어른이 된 잠자리는 길어야 몇 달 밖에 살 수 없기 때문일까?
어쩌면, 어른 잠자리는 내년에 다시 만날 기약을 할 수 없기 때문일까?
왜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것일까?
지나가는 여름과 함께 나의 시간도 흘러가 버린 것에 대한 안타까움인가?
다가오는 가을에는 나의 늙음도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인가?
그래서일까?
나는 오늘, 한여름의 햇살을 피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일, 저 뜨거운 태양마저도 그리워질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