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린이어깨동무 Feb 12. 2020

6. 토스트를 만들다 눈물을 흘린 날

by 파랑

2013년에 ‘어린이어깨동무’에서 '동아시아 어린이 평화워크숍' 모둠교사를 하면서 회원이 되었고, 2018년 9월에 어린이어깨동무에서 코리밀라로 파견하는 첫 번째 자원활동가가 되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은 어린이어깨동무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어린이어깨동무는 한반도가 더 이상 갈등과 분쟁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고 남과 북의 어린이들이 서로 마음을 나누는 평화로운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북녘 어린이 지원, 평화교육문화활동, 남북어린이 교류사업 등을 전개하고 있는 단체다. 코리밀라는 북아일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평화단체로, 북아일랜드의 갈등 해결과 평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어린이어깨동무는 코리밀라를 서울로 초대하여 평화교육 심포지엄을 진행하였고, 자원활동가도 파견하는 등 교류활동을 하고 있다. 두 단체 모두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하고 있다.

코리밀라에서 2018년 9월부터 2019년 7월까지 자원활동가로 있으면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쓴다.


토스트를 만들다 눈물을 흘린 이유는


2019년 1월의 어느 날 밤 9시 20분. 토스트를 만들다가 거의 눈물을 흘리기 직전이었다. 연락이 겨우 닿아 주방으로 들어오는 야간 담당 스태프한테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했다.


“어디에 있다가 이제 온 거예요? 왜 전화는 안 받았어요?”


토스트를 만들다가 눈물을 흘릴 줄이야. 코리밀라 생활을 시작할 때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9시 30분 프로그램을 마치고 돌아오는 그룹을 위해 토스트와 핫초코를 준비해야 했다. 빵을 굽고 버터를 바르고 반으로 자르면 되는 간단한 일. 다만, 문제는 그날따라 토스터기가 말썽이었던 것이었다. 신관에 있는 토스터기가 작동하지 않아, 본관까지 뛰어가서 다시 토스터기를 들고 왔는데 그것마저 먹통이었다. 야간 담당 스태프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핫초코를 끓이며 메시지를 보냈다. 스태프가 다른 업무로 자리를 잠깐 비운 사이에 이런 문제가 일어나다니… 9시 30분이 다 돼가는데, 30인분 토스트를 하나도 만들지 못했다. 토스트도 제대로 못 만드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메시지를 본 스태프가 주방으로 왔다.


다 식어버린 토스트. 뒷정리하면서 다시 한 개씩 집어먹는다.


알고 보니 부엌 전기코드에 잠깐 문제가 생겼던 것으로, 토스터기는 멀쩡하게 작동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울 일까지는 아니었는데, 당시 잘 해내고 싶다는 부담감과 어둠으로 고요한 바깥, 아무도 없는 건물, 연락이 닿지 않은 동안 10분간 온갖 감정이 들면서 결국 눈물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그룹과 돌아온 자원활동가들이 손에 내가 끓인 핫초코를 쥐어주며 연신 괜찮다고 말해줬다.


코리밀라에서 자원활동가는 여러 일을 한다. 프로그램을 보조할 때도 있지만, 청소도 하고, 주방에서 일도 하고, 설거지도 하는 것이 주 업무다. 지금 쓰는 글에는 프로그램 이야기가 많을 수밖에 없는데, 일주일 내내 청소와 설거지, 주방보조 등의 일을 할 때가 더 많았다. 청소(housekeeping), 주방(kitchen), 그룹 응대(hospitality) 업무를 돌아가면서 한다.


8시 30분에 아침(breakfast), 1시에 점심(lunch), 6시에 저녁(dinner), 9시 30분 즈음에 밤참(supper)을 먹는다. 중간에 하루 중 2번 정도 티타임도 있다. 스태프와 자원활동가가 함께 만들어가는 코리밀라의 리듬이다.  

(supper는 보통 마지막으로 먹는 간단한 끼니를 말하는데, 맥락상 밤참으로 번역했다. 지역과 사람에 따라서 각자 먹는 스타일이 다르다. breakfast, dinner, supper로 낮에 먹는 식사를 dinner, 저녁시간에 먹는 식사를 supper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


이 음식은 뭐예요? 글쎄요...?


함께 있던 자원활동가들 모두가 좋아하는 일은 바로 ‘주방보조’였다. 시작시간도 여유로웠고, 6-7시간 연달아 일하는 다른 일과는 달리, 중간에 쉬는 시간도 길었다. 브라우니를 굽는 냄새를 맡으며 일할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주방에서 식재료를 손질하고, 냄비 등을 설거지하고, 전체에 배식하는 일을 주로 했다.


코리밀라에 가는 것을 준비할 때부터 주방보조로 일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면접 때도 요리에 관심 있냐고 물어봤다. 하지만 외국어, 특히 영어를 공부할 때 누가 요리와 관련된 단어를 공부할까. 혹시 몰라 가기 전에 유튜브에서 요리 채널을 보면서 영어 공부를 했는데, 머리에 남는 것은 소금 한 꼬집(a pinch of salt)뿐이었다. 걱정과는 달리 코리밀라의 스태프 대부분은 자원활동가와 일한 경험이 풍부해서 다들 친절하게 일을 가르쳐 주었다. 요리와 관련된 영어를 못하는 나 같은 자원활동가도 있었고, 평소에 요리와 담쌓은 사람들도 있어서 눈으로 예시를 보여주며 일을 할 수 있게 많이 도와주셨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테이블에 샐러드를 가득 쌓아놓을 때도 있었다.



비건 요리. 코코넛 치즈를 올려서 채소를 오븐에 굽는다.


12시 59분. 점심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밖에서 웅성대는 것이 들린다. 배식구의 문을 열고, 배식을 시작한다. 메인 메뉴를 배식하고, 샐러드를 먹을 만큼 가져갈 수 있다. 메인은  채식 옵션과 사전에 받은 알레르기 정보를 바탕으로 대체 요리도 준비된다. 음식을 배식할 때 어떤 요리인지 물어보는 경우도 있다. 대답할 수 없으면 눈짓으로 함께 일하던 다른 자원활동가들에게 물어본다. 질문을 못 알아들었을 때,  무슨 요리인지 물어보는 질문인지는 알겠는데 영어 이름을 잊어버렸을 때, 들어간 재료 이름이 영어로 모를 때, 특정 재료가 들어갔는지 모를 때는 조심스럽게 옆의 도움을 구했다. 저녁 배식을 끝내고, 주방을 정리하고 남은 디저트를 기숙사로 들고 오면 부엌 일과가 끝이 난다.


다음 사람을 위해 준비하는 침대


청소 담당인 날에는 센터 전반을 청소하는데, 머물렀던 그룹이 떠나는 날에는 사용한 방 청소를 모두 해야 해서 하루하루가 달랐다. 어느 연령대의 사람이 몇 명 머물렀는지에 따라서 그날의 난이도가 달라졌다. 업무분장을 보면서 업무 난이도를 가늠하곤 했다. 대신 모든 일 중에 가장 일찍 끝나서, 짧고 굵게 일을 하는 편이었다.


그룹이 떠나는 날이면 아침 8시 30분, 새로운 시트를 나눠주기 시작한다. 코리밀라에서는 떠나는 사람이 새롭게 올 사람을 위해 침대를 새롭게 준비하고 간다. 머물렀던 침대의 시트를 직접 그룹이 갈아야 하는데, 청소 업무를 맡은 담당자가 시트를 나눠주고 명단을 체크한다.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도 직접 침대 시트를 갈아야 한다. (물론, 전날에 그룹 담당 자원활동가들이 침대 시트를 가는 법을 가르쳐주는 경우도 많고, 아침에 와서 선생님들과 침대 시트를 가는 것을 도와준다. ) 새롭게 오는 사람들을 함께 환영하는 의미다. 그룹이 도착했을 때, 이 점을 안내한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에서 새로 도착하는 사람들을 환영하는 의미로 침대 시트를 직접 갈고 있으며, 지금 준비된 방도 이전에 왔던 사람들이 정리해놓고 가는 방이라고 알려준다.


물론 침대 시트를 보기 좋게 다시 매만지는 것은 자원활동가들의 몫이다. 겉과 속이 뒤집힌 이불 시트를 다시 끼우고, 이불을 털어서 정리한다. 방에서 사람들이 사용한 모든 것을 하나하나 닦는다. 방에서 과자파티를 한 것인지, 과자 부스러기가 계속 나온다. 짧은 1박 2일 사이에 언제 이렇게 과자를 먹은 것인지 의아해질 때도 있다. 청소를 하면서 모두가 생각한 미스터리는 바로 이것이었다.

왜 꼭 누군가는 양말 한 짝을 버리고 가는가?



함께 설거지할 사람 있나요?  


그 외의 일은 호스피탈리티(hospitality)에서 담당했다. 환대라는 뜻을 가진 단어고, 위에서는 그룹 응대라고 적었다. 그룹이 코리밀라에 편하게 머무를 수 있게 도와주는데, 처음에는 호텔리어 같다고 생각했다. 주요 업무는 식기 세팅을 비롯한 식사 준비, 티타임 준비, 설거지다. 식사시간에 자리에 앉으면, 자원활동가가 작은 종을 울린다. 음식에 감사하는 짧은 침묵 시간이다. 침묵이 끝나면 모두에게 물어본다.


“코리밀라는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로, 식사 후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설거지하고 있습니다. 함께 설거지할 사람 혹시 3명 있나요?”


아이들도 어른들도 손을 든다. 설거지를 할 사람들이 식당에서 사용한 그릇을 주방으로 가지고 오고, 식기세척기에서 나온 그릇을 닦는다. 자원활동가가 그릇을 헹구고 일렬로 트레이에 넣는다. 다른 그룹에서 온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북아일랜드 밖에서 온 자원활동가들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설거지를 도와주던 한 친구는 자신의 휴대폰에 있던 레드벨벳 포토카드를 나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사람이 많아서 설거지가 많을 경우에는 프로그램 시작시간까지 다 못 마쳐서 자원활동가가 마지막 뒷정리까지 마친다. 하루는 설거지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밖에서 식당 정리를 하던 친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노을이 너무 아름답다고, 잠깐 밖을 보고 오자고 했다. 하늘이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설거지를 하다가 하늘을 볼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고 다들 이야기했다


그룹의 도착시간과 쉬는 시간에 맞춰서 차와 커피를 준비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사람들에게 환영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차 한 잔 드릴까요?’는 손님을 맞이하는 일 중 하나인 것처럼. (녹차를 주는지, 홍차를 주는지가 큰 차이점이다.) 단지 센터에서 커피머신으로 40명이 마실 커피를 내리는 것이 약간 힘들 뿐이다.


환영의 표시로 티 테이블을 준비하기

코리밀라 밖에서 이런 적이 한 번 있었다. 코리밀라에서 5km 마라톤을 준비하며 동네 러닝 클럽에서 뛰게 된 것을 계기로 나는 밸리카슬 해변 마라톤 대회에서 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었다. 중간 구간에 서 있으면서 코스를 알리고 사람들을 응원하는 역할이었다. 그런데 그날이 하필 약한 비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집안에서 저 멀리서 비를 맞던 나를 보고 있던 분이 밖으로 나와서 차 한 잔을 주셨다. 계속 거절했는데도, 춥다고 따뜻한 차가 필요하다고 계속 권유해주셔서 따뜻한 차를 마셔서 몸을 데울 수 있었다. 코리밀라에서도 누군가가 들어서면 환하게 웃으며 차 한 잔을  준비한다.


농담으로 웃으면서 코리밀라에 있던 경험을 통해 설거지의 달인이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30인분의 핫초코와 버터 토스트를 만들 수 있다. 몸은 고되었지만, 다른 곳에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5. 모여서 꼭 평화를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