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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ㅇ Nov 29. 2021

매일매일 뚝딱대는 내향인 광고 기획자 #1

누굴 미워하는 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광고업 특성상 협업은 필수이며, 피할 수 없는 운명이자, 비극이며… 더 이상의 말은 생략한다. 나 같은 경우 협업을 통해 발생하는 감정의 대부분이 미움이었다. 그다음은 상대방의 재능을 향한 질투였고. 연말, 연초에는 담당하는 브랜드의 연간 제안과 경쟁 PT로 여느 때보다 협업할 일이 많다. 그래서 11월부터 미움이 엄청나게 커지는데, 나는 이 미움을 겉으로 드러내기 힘든 인간인지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다. 


그런데 요즘은 쉽게 누굴 미워하기가 어렵다. 내가 미워하는 대상이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에는 각자의 사정이 있다는 걸, 그 대상 또한 이것이 잘못됐음에도 이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는 걸 자주 목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만을 초래하는 상황임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일을 완수하기 위해, 그리고 협업에서 발생하는 사람 간 상처받는 일을 최소화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면, 너무 미워하진 않기로 했다. 


물론 모든 사람한테 그러한 건 아니고, 상대방을 향한 최소한의 존중도 없고, 무시하거나 여기저기 다른 얘기를 하면서 입만 살아서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노답 인간들에겐 미워하지 않는 노력 따윈 하지 않을 것이다. 그 한둘을 빼고는 너무 미워하는 마음에 집중하지 않으려 한다는 거다. 


근데 계속되는 야근에 심신 미약의 상황에서 너무하다 싶은 결정들을 보며  미워하는 마음을 줄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미움을 줄일 구체적인 가이드를 세워봤는데, 앞서 말한 것처럼 상황이 그러한 선택을 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선 상황파악, 후 미워하기를 하기로 했다. 특히 “저 인간은 왜 저럴까?” 라는 물음에 집중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그 사람이 아닌 이상, 이 물음에 답을 낼 수 없다는 걸 그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 인간 또 저러네,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신 만나지 말자’라는 마음만 남기고 다음엔 만나지 않길 기도하며 넘어가려 한다. 또 하나는 웬만하면 그 문제점에 대해서도 너무, 자주 얘기하지 않으려 한다. 자주 미움을 쏟아내면 다른 미움까지 덕지덕지 붙어서 안 되겠더라고. 욕 세 번 할 거, 두 번으로 줄이고 그 일과 연관된 사람에게만 토로하고자 한다. (과연 될런지...)


일단 3주간 계속된 야근이 끝났고, 오랜만에 휴가를 내 카페에서 맛있는 스콘과 커피를 마시고 있다. 휴가에 미워하지 않는 방법에 관해 골똘이 생각하고 있는 내 모습이 과도한 자기검열 같기도 하지만, 나란 인간은 누군가를 몹시 미워한다고 미워하는 대상에게 화를 내거나 한 소리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최대한 미워하는 상황을 피하는 게 상책이다. 


다음주 부터는 또 다른 야근이 시작된다. 미친... 

내가 미워 하는 마음에 조금만 덜 마음 쓰길 바라며, 제발 이 가이드가 한 번이라도 적용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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