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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ㅇ May 15. 2022

해결보다 존중

올해 어버이날 선물은 PT 30회다. 엄마가 최근에 몸에 근육이 많이 빠진 것 같다고 속상해하던 모습이 떠올라 결정한 선물이다. 엄마에겐 1:1 전문가의 강습이 처음이었던지라, 본인이 큰 호사를 누리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시작하기 전부터 운동에 필요한 용품을 구매하며 설레했다. 그렇게 시작한 운동이 3주가 지났는데, 엄마는 항상 PT 선생님이 하신 말을 아주 중요한 가르침처럼 얘기한다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고기를 아주 많이 먹으래.


선생님이 그러는데, 혼자 연습을 안 하면 강습이고 뭐고 소용없대.

너무 당연한 얘기를 아주 중요한 가르침처럼 얘기하는 엄마를 보며 웃다가, 엄마의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 관해 생각했다. 작년에 엄마 집 인테리어를 담당해주었던 사장님들은 지성인이라며, 대단한 사람들이라 칭찬했고, 지금 PT 선생님을 얘기할 때도 항상 선생님이라는 말을 첫마디에 붙이고 귀한 말씀처럼 얘기한다.


인테리어와 PT선생님이 귀한 직업긴 하지만, 보통은 이 직업군은 스트레스를 받은 일과 연결되지 않은가? 나만 해도 PT 선생님이 1년 몇 번 바뀌었고, 3년 전 집 인테리어할 때도 사장님과 언성 높인 일이 몇 번 생겼다. 그런데 엄마는 어떤 사람이든 그 사람을 무시하는 일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상대방에게 부당한 일을 당하는 경우도 많지만, 반대로 엄마의 태도에 감명해 서비스를 더 받거나, 혜택을 받기도 한다. 


엄마의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나는 ‘존중’이라 말하고 싶다. 사전적 의미의 존중은 높이어 귀중하게 대한다는 뜻이다. 엄마는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나이와 직업을 막론하고 그들의 말을 귀중하게 대한다. 물론 이게 항상 좋은 건 아니다. 엄맘가 상대방의 높게 본다는 건 상대적으로 본인은 부족하고 낮은 사람으로본다는 이야기로 나는 종종 자기 비하에 빠지는 엄마의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엄마는 나의 정신적인 울타리는 되어주는 소위 강한 엄마는 아니었다. 내가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대학 진학을 결정하고, 좋아하는 과와 취업이 잘 되는 과 중 어떤 과를 선택할지 고민할 때도 내가 행복한 방향으로 결정하라고 한 엄마다. 이 말에는 그 고민을 하는 과정에서의 장단점은 네가 가장 잘 알테니 해결책을 줄 수 없지만, 너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마음이 담겨 있다. 고민 끝에 나는 좋아하는 것을 선택했고, 이 조언은 나에겐 지금까지도 힘이 된다. 존중하는 태도는 상대방의 고민을 들어줄 때 빛을 발한다. 


우리는 해결책을 듣고싶어 타인에게 고민을 토로하는 일은 드물다. 대부분의 경우 해결책은 누구보다 나 자신이 더 잘고 있다. 어차피 답은 내 안에서 정해져있고, 나의 선택을 존중하는 마음을 받고 싶어 고민을 얘기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응원이 담긴 존중의 마음을 동력 삼아 해결하는 에너지를 얻고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엄마의 첫째딸인 곧 마흔인 장녀는 타인의 고민에 해결책으로 대응하는 버릇을 고쳐야겠다고 다짐 해본다. 마지막으로 부디 엄마에게 경전과 같은 말씀을 주시는 PT 선생님은 퇴사하지 않고 끝까지 엄마를 가르쳐 주어 끝날 때까지 좋은 선생님으로 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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