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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기 저기 Oct 14. 2021

이쁘게 혹은 현명하게 말하기

일상 디자인 스몰 토크

비 오는 월요일 점심, 인쇄소가 잔뜩 몰려 있는 시내 인쇄 골목으로 식사차 나갔다. 서울로 따지면 을지로 같은 곳이다. 작은 인쇄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충무로 또는 을지로'라는 지역의 맥락을 디자이너들은 잘 안다. 나이가 좀 있는 '꼰대' 그래픽 디자이너들에게는 추억이 흠뻑 묻어 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이 도시에서도 여기는 참 아늑하다. 각설이 길었다. 구도심인 이곳에서 통행을 방해하지 않고 주차하기 위해서는 도로를 침범하는 개구리 주차를 할 수 밖에는 없다. 이렇게 주차를 하고 나면, 작은 가게의 입구를 가리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는 않지만, 먹고 싶은 점심메뉴를 재빨리 먹고 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어 잠시 실례를 해야만 한다.


매의 눈으로 주차할 자리를 찾으며 전방주시 운전을 하던 중 차 한 대가 들어갈 주차 공간을 발견했다. 운전 솜씨는 이럴 때 한껏 발휘하는 거다. 멋지게 전후방과 모니터를 살피며 후진 일자 주차로 인도턱을 가뿐히 넘어 주차를 마쳤다. 대단한 일을 한 양 기분이 좋다. 장애물을 피해 완벽한 주차를 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하차하다가는 내가 피한 장애물이 꽤나 '신박한' 것임을 알고 순간 놀랍고 즐거웠다. 그래서 바로 휴대폰에 한 컷 담았다.

시내 인쇄골목에서 발견한 주차 방해용 화단

보통 이런 곳에는 '여기에 주차하지 마시오'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들을 놓는다. 주로 등장하는 것들은 오래된 의자나 폐타이어 혹은 오렌지색 주차금지 표지 등 다양하다. 주차를 원치 않는다는 것은 알겠으나, 거리의 미관이나 기능에도 그다지 좋치는 않다. 메시지의 타당성을 떠나 의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여엉~ 별로다. 인정은 하나 보기는 싫다. 그런데 이 가게 앞에는 예쁘고 소담한 화단을 조성해 놓은 것이 아닌가? 주차 시에는 장애물이라 뭔지 모르고 피해서 주차하기 바빴다. 그런데 피해서 주차하고 보니 그것은 꽃밭이었다. 더더군다나 봄비 맞은 꽃이 왜 이리 이쁜지... 주차하지 말아 달라는 메시지를 이렇게 밉지 않게 하는지... 이렇게 기분 좋은 주차금지 표지판은 처음이다.


내가 전공하고 있는 시각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통해 이미지와 정보를 만들고 전달하는 분야다. 그 과정에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태도는 매우 중요하다. '어떤 뉘앙스와 전략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느냐'를 결정하는 과정은 디자인의 성패를 좌우하는 매우 치명적인 부분이다. 아무리 좋은 말도 이쁘지 않게 하면 듣는 사람이 기분 나쁘지 않은가?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좋은 디자인은 이런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과정이다. 그렇게 디자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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