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적인 단팥죽을 만나다
DAY 1
드디어 B가 휴가를 받았다. B는 요즘 뭔가를 수련하느라 인생 최고 괴로운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새벽에 일이 끝나고 잠시 눈을 붙인 B를 납치하듯 차에 싵고 친구같이 부담 없는 도시 춘천으로 향했다. 모두가 정신없고 바쁜 터라 이번 춘천행은 그동안 다녔던 곳들을 다시 방문하는 것이 기본 계획이었다.
그러나! 세상 일이 어디 그리 만만하던가? 도착하자 먹고 싶었던 최애 막국수집은 전화를 안 받고, 중간중간 들르려던 카페들도 휴가 중 이거나 월요일 휴무란다. 뭐 그깟 일에 그러겠냐 싶지만은 우리는 바이러스 먹은 컴퓨터처럼 버벅거린다. 고속도로 위에서 대책을 고민하고 플랜 B를 세운다. 남들이 보면 나라 구하는 줄 알겠다.
도착해서 첫끼니는 1.5 닭갈비(again & again). 맛은 있지만 옷에 밴 양념 냄새는 어쩔~. 식후 문화활동은 마녀소품가게(again) 쇼핑. 겨울에 다녀간 우리를 젊은 사장님이 기억하신다. 또 듬뿍 사서 나왔다. 중간 디저트는 박혜정 베이커리(again). 저녁은 육림고개 위 최애 이태리 레스토랑인 수아마노(again & again). 1년 만에 다시 왔지만 여전히 맛있고 즐거운 곳이다. 동네 마실 하듯 어게인의 연속이다.
예와생 스튜디오 카페
식사 후 디저트 초콜릿 케이크를 찾아 춘천 근교 동면의 한적한 들판에 있는 카페를 찾았다. 사진 스튜디오와 카페를 겸하고 있는 꽤나 널찍한 공간이다. 기본은 충분히 하는 초콜릿 케이크 맛이다. 세련된 도시 카페의 맛은 아니지만 본연의 맛을 충분히 간직하니 나쁘지 않다. 어두운 밤에 온 사방에 초상 사진과 그림들이 붙어 있어 살짝 ‘귀곡산장’ 같은 느낌도 준다. 그래서 후다닥 해 치우고 요즘 춘천 공식 숙소인 더 잭슨 나인즈호텔로 돌아와 묵는다.
DAY 2
평양막국수(공식지정 막국수집)
첫날 못 간 아쉬움을 풀어야 한다. 11시 호텔 체크아웃을 하자마자 달려갔다. 거리는 약 7분 정도. 매번 오지만 올 때마다 이곳 예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은 기온도 적당해서 마당에 앉아 식사한다.
이 낡은 옛날 주택 마당이 따듯함이 너무 좋다. 나를 꼬옥 안아주는 것 같은 편안함을 준다. 아무리 멋진 인테리어 디자인이나 고급 자재도 이런 정서적인 만족감을 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를 계속 찾는다. 기업형 맛집이 절대 줄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다. 또 올 거다.
착한팥쥐네
결론적으로 여기가 대박이다. 춘천 구도심 한림대 성심병원 근처 도로변에 위치한 팥 관련 플레이스이다. 그 정체성이 오묘하다. 식사도 가능하고 디저트도 가능하다. 전천후 팥 스폿이다. 어디서 정보를 얻었는지 모르지만, 나의 네이버 지도 저장 리스트에 있어서 식사 후 방문했다.
구도심 호젓한 동네에 테이블 두 개만 있는 소박한 곳이다. 생활의 달인 방송을 탄 후 손님들이 많아져서 하루 준비한 음식량은 오후 2시경이면 떨어진다고 한다. 사흘 동안 정성 들여 준비한 팥으로 음식을 만든다니 이해가 간다.
식사메뉴는 팥칼국수와 팥죽이 있다. 디저트는 단팥죽과 팥양갱이 있다. 또 팥으로 차를 만들어 액상으로 판매하고 있다. 춘천 최고 애착 음식인 평양칼국수를 감격하며 먹은 우리는 달달한 디저트가 필요해 찾아온 것이니 메뉴는 당연히 단팥죽을 주문했다. 막국수라는 식사 아이템이 배를 아주 근근하게 하는 것은 아니니 단팥죽 같이 살짝 헤비 한 디저트가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나무 쟁반에 놋그릇과 놋수저가 정갈하기 그지없다. 계속 합격이다. 팥을 갈아 만든 부드러운 단팥죽을 입에 한입 떠 넣는 순간! 이 집은 우리 맛집 방문 리스트에 바로 자동 등록된다. 팥의 맛이 너무나 부드럽고 달지 않되 은근한 단맛이 입안에 맴돈다. 양도 적당하여 디저트가 필요한 배를 적당히 채워준다. 모든 것이 ‘딱’이다.
단팥죽을 먹다가 이쁘게 진열되어 있는 팥양갱도 하나 주문해 먹었는데, 그 맛도 아주 괜찮다. 주변에 양갱 좋아하는 이가 별로 없어 단팥죽처럼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양갱도 아주 맛있고 건강한 디저트로 손색이 없었다.
양갱 전시 테이블 위에 팥차를 팔고 있었다. 이곳의 팥을 공장에 보내 제조한 것이라고 한다. 또 방앗간 앞에 참새가 되었다. 혹시 팥차를 조금 맛볼 수 없겠냐고 주인분께 문의했고, 흔쾌히 두 잔을 따듯하게 내주셨다. 팥차는 처음 먹어본다. 맛이 구수하니 아주 괜찮다. 묵직한 커피 같은 느낌도 좀 있다. 색상은 보리차나 동글레차 같은 브라운 색이다. 난 까말 줄 알았다.
올 어바웃 팥! 아주 특색 있고 맛있는 곳을 발견한 나의 센스에 다시 한번 우쭐한다. 주인장 분도 너무 친절하고 좋으시다. 선한 인성이 그냥 묻어나시는 것 같아 마음이 좋다. 계산할 때에는 턱없이 적게 계산을 하셔서 깜작 놀라 바로잡아 제대로 계산을 해드렸다. 서울깍쟁이들만 보다가 여행 와서 가끔 만나는 이런 분들을 보면 마음이 몰랑해진다. 감사한 일이다.
끽다
단팥죽은 디저트이나 커피가 아니므로 2차 디저트 커피로 마무리해야 한다. 근처 멀지 않은 주택가 안에 숨어있듯이 자리 잡은 작은 카페를 찾았다. 말차가 메인 콘셉인 카페다. 신경 안 쓰고 운전하다 보면 놓쳐버리기 딱 좋다. 말차 케이크와 프릿첼에 말차 코팅한 과자가 제 맛은 다한다. 이제 다 먹었으니 집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