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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리스본 3

2025. 1. 22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여행기 15

by 여기 저기

체크아웃하고 귀국을 위해 이곳을 떠나는 날이다. 늦은 밤 비행기 일정이라 레이트 체크아웃을 원했으나 이 속소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11시에 청소하는 이가 예약이 되어 있어 안된다는 것이다. 짐 들고 나서면 피곤해지는데... 아침에 남아있는 빵과 과일 등으로 간단히 해결한다. 11시 체크아웃하려면 은근히 아침이 바쁘다. 11시가 되니 기다렸다는 듯이 딩동 벨소리가 울린다. 칼 같다. 문을 여니 흑인 여자 젊은이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서있다. 어디를 가나 도시 근로자들의 알굴은 무겁다.

(좌) 숙소 창밖 풍경 (중) BIMBO 식빵. 스페인의 삼립빵 정도? (우) 편리한 식탁이 있어 편했다

귀국 짐들을 들고 숙소를 나왔다. 이제부터는 원데이 홈리스 신세다. 짐은 근처 가게에 맞기는 서비스를 예약해 놓았다. 귀국짐을 들고 리스본의 울퉁불퉁한 언덕길을 이동하는 일은 보통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 아니다. 끌고 밀고 들고 온갖 자세로 천천히 움직여 짐 맞기는 장소에 도착하고 위탁한다. 정말 동네 구멍가게다. 남는 공간에 짐을 받아서 보관해 주고 비용을 받는 서비스를 한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플랫폼이다. 혹처럼 붙어 있던 짐을 맡기니 이제는 날아다닐 것만 같다.

식사는 그저께 도착한 날 밤 힐링 식사 베트남 음식점으로 정한다. 저녁에 비행까지 가야 하니 국물로 속을 달래 놓아야 한다. 시간이 좀 남으니 천천히 동네길을 걸어 식당으로 향한다. 걷는 중에 소방차가 많이 서있다 했더니 소방서가 있다. 소방서 앞 빨간 벤치의자가 인상적이다. 벤치 위에는 성모상 디스플레이가 예쁘게 장식되어 있다. 소방서인지 카페인지... 멋스럽기 그지없다.

(좌) 짐 맞기는 가게 (중) 소방서 외관 (우) 소방서 앞 빨간 벤치

Tre Bambu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 들어오라며 불을 켜준다. 뭔가 동양인들 만의 이해와 배려심 같은 것을 느낀다. 서양인들의 칼 같은 행동과는 뭔가 다른 감성을 느낀다. 동질감이 느껴진다. 오늘은 쌀국수와 볶음밥에 반세오를 주문해 본다. 반세오가 신선하고 고소하며 담백하게 맛있다. 좋은 선택이었다. 리스본 최고의 베트남 식당임이 분명하다.

(좌) 소박해 보이는 주간 출입문 전경 (우) 쌀국수, 반세오, 볶음밥

식사를 마친 오후 시간은 귀국 선물 구입과 쇼핑 타임이다. 우버를 타고 쇼핑거리로 달려간다. ZARA, MANGO, BERSHKA, PULL & BEAR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패션숍들이 즐비하고 그 규모도 무척 크다. 겨울 제품들은 모두 세일 시즌이라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차근차근 찾아보면 건질 수 있는 물건들이 많을 텐데... 같은 브랜드라도 우리나라에는 들어오지 않는 색상이나 제품들이 많이 있다. 세일하는 제품들은 우리나라와 비교해서 엄청나게 저렴하다.


쇼핑도 역시 체력을 필요로 하니 두어 시간 쇼핑 후 카페를 찾아 휴식을 취한다. 마지막으로 포르투갈 간식의 아이콘 에그타르트를 먹는다. 한겨울이지만 창문을 활짝 열어 놓은 카페에는 참새들이 손님 테이블 밑에 까지 들어와 떨어진 빵가루를 쪼아 먹는다. 겨울의 풍경이 이리도 온화하다니 부럽다. 이 날씨.

(좌) 종점에 대기 중인 트램 (우) 패션 매장 MANGO에서 바라보는 거리 풍경
(좌) 겨울인가 싶은 카페 풍경 (우) 에그타르트와 음료
(좌) 카페에 찾아드는 참새들 (우) 카페 베란다에서 내러다 본 거리 풍경

ZARA

특히 ZARA는 큰 건물 하나가 모두 매장일 정도로 크다. MAN, WOMAN, HOME, KID 등 브랜드 계열의 모든 제품들이 웬만한 백화점 하나 크기의 건물에 모두 들어 있다. 가격이 적당하고 디자인도 뛰어나고 모든 면에서 쇼핑할 것들이 너무 많다. 무게와 부피 때문에 가져갈 수가 없으니 모두 그림의 떡일 뿐이다. 눈 호강이라도 실컷 하자.

(좌) 자라홈 Bath Goods 디스플레이 (우) 벽면 디스플레이 아트. 오브제들의 구성이 조명과 어우러져 멋지다

쇼핑을 후다닥 대충 마친 후 마지막 일정을 향해 이동한다. 저녁 식사 전 해변가로 나가 한때 세계를 제패했던 그 바다를 보고자 한다. 바닷가로 이동을 할 때만 해도 하늘은 파란 편이었다.

이 거리의 끝이 바다다
바닷가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 사진을 찍고 있다

그런데 바닷가에 도착해서 사진 몇 장 찍고 있는 동안 먹구름이 빠르게 하늘을 뒤덮는다. 그러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리스본의 날씨 변덕은 정말 수준급이다. 바다 앞에는 큰 광장과 동상이 있다. 여수 바닷가 가면 이순신광장 있는 것과 똑같은 구조다. 폭풍 전야 같은 바다를 뒤로하고 빠르게 광장을 거슬러 나와 우버를 부르고 저녁 장소로 이동한다.

바닷가 광장과 동상

Pils Eatery

저녁 식사 장소는 오전에 짐 맡기고 이동하다가 우연히 본 동네 식당을 선택한다. 리스본 스테이크를 판다고 쓰여 있어 고기를 좀 먹어야겠다 싶었다. 이곳에서 식사하면 지척에 짐을 찾을 곳이 있으니 일단 짐 근처로 와서 동선을 줄이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낮에 보던 모습보다 조명이 들어온 식당의 입구는 더욱더 팬시해 보인다. 동네에서 꽤나 격조 있는 식당인 듯싶다. 분위기가 아늑하고 친절하다. 소품 디자인이나 실내 꾸밈이 센스 있다. 꼬치고기와 햄버거, 시저샐러드를 주문한다. 어차피 비행기 타면 비빔밥을 먹을 테니 부담 없이 서양 음식을 먹는다. 이곳은 나름 철학이 있는 것 같다. 코카콜라를 주문했는데, 이곳에는 콜라가 없다. 그 대신에 천연 콜라가 있다고 한다. 호기심에 주문을 한다. 과일향이 나는 탄산수 같은데 맛이 좋다. 왠지 건강해지는 느낌? 그냥 동네 식당은 아니었나 보다. 음식도 신선하고 맛있다. 일하는 서버들도 무척 친절하고 즐겁다. 마지막 식사에서 아주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받은 우리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팁을 주고 왔다. 당연히 무척 좋아한다. 식사 후 몇 발짝 걸어 짐을 찾고 우버를 불러 공항으로 이동한다.

(좌) 식당 외관 (우) 컵 받침 디자인

리스본 움베루투 델가두 공항 LIS

공항에 도착 후 쇼핑한 물품들을 비워 놓은 가방에 채워 넣는 작업을 한다. 원데이 홈리스 티를 내고 있다. 짐을 정리하고 짐을 부치고 면세구역으로 이동한다. 면세구역에는 이쁜 기념품들이 많다. 귀국 기념용 과자와 물품 몇 가지 구입 후 게이트 쪽으로 이동한다. 리스본 공항에서는 두 가지 체크 사항이 있다.


첫 번째는 Tax Free Return 관련인데, 짐 부치는 카운터 옆에 Tax Free Return 코너가 있다. 사람들이 큰 러기지를 카트에 싣고 길게 줄 서 있다. 줄을 서야하나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세금을 돌려받기 위해서는 구입한 물건이 있어야 한단다. 우리는 짐에 넣어 위탁수하물로 보냈는데... 대한항공 한국 직원에게 물어보니 항공사에서 실수로 짐을 보냈다고 말을 해 보라고 한다. 그럴 요량으로 줄을 서 있는데, 한국 분이 투덜대며 앞 줄에서 오신다. 이유를 물으니 세금 반환을 못해준다고 한단다. 내가 봐도 이곳은 세금을 호락호락 돌려줄 곳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까짓것 깔끔하게 포기한다. 그런데 몸수색과 가방 검사를 하고 들어간 면세 구역에 Tax Return 카운터가 또 있다. 우리나라 공항 은행 같이 깔끔하게 있다. 가서 매장에서 받은 관련 서류를 보여 줬더니 현금으로 받을지 카드로 받을지 결정하라며 바로 처리해 준다. 뭐지? 아까 수하물 카운터에 있던 그곳은? 아무튼 리스본 면세는 면세구역에 들어와서 받으시라.


두 번째는 공항의 구조다. 보통의 공항 면세구역은 시큐리티 체크하고, 출국수속하고 탑승 게이트 가기 전에 있다. 그래서 면세 쇼핑을 하다가 시간이 되면 게이트로 찾아가면 된다. 그런데 리스본 공항은 면세 구역이 시큐리티 체크와 출국수속 중간에 있다. 대부분 우리 여행객들은 습관대로 면세구역에 오면 모든 출국 절차를 끝냈다고 생각하고 쇼핑에 진심을 보이며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면세 쇼핑구역에서 게이트로 가려면 출국수속이라는 절차를 한번 더 거쳐야 한다. 비수기라 줄이 없는 경우는 큰 상관이 없지만, 지인 하나는 출국 수속 줄이 길어 비행기 시간 맞추느라 식겁했다고 한다. 리스본 공항에서 면세 쇼핑을 할 경우 출국 수속 줄이 어떤지 꼭 체크해야만 한다. 정신줄 놓았다가 톰크루즈 주연 영화 '터미널'의 주인공이 되는 수가 있다.

(좌) 수하물 위탁 전 짐 정리 (우) 면세점 선물용 먹거리들

비행시간이 자꾸 딜레이 된다. 예정시간보다 약 1시간 이상 늦게 보딩 한다. 보딩타임은 밤 11시가 넘는 밤이 다. 언제 가나 싶었던 안달루시아 여행이 이렇게 마무리된다. 시간은 흐른다.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번 여행을 마감하며 다음 여행을 만들 희망과 기다림을 기대한다. 언제 와도 넉넉하고 격조 있는 늙은 대륙 유럽의 멋을 한껏 즐겼다. 감사하다. 땡스 갓.

(좌) 운 좋게 마일리지 업그레드 티켓을 활용해서 얻은 비즈니스 좌석 (우) 식전 애피타이저
식사 코스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식사를 제공한다. 역시 우리의 날개 대한항공! 식사의 품질이 여느 항공사보다 뛰어나다. 맛도 서비스도 구성도 모두 최고다. 식사를 하고 취침 세팅을 하고 잠을 청한다. 자리가 편안하니 잠이 잘 온다. 승무원이 식사하라고 깨운다. 뭐라고? 식사는 도착 전에 제공한다 했는데.... 그럼 지금이 도착 전이라는 이야기인가? 시계를 보니 정말 도착 2시간 전이다. 내가 10시간 가까이 잣다는 건가?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쪽잠은 잔적이 있어도 비행 통째로 자면서 이동한 경험은 없다. 라면도 못 먹었고, 중간에 받을 수 있는 서비스는 모두 날렸다. 얼마짜리 수면을 한 건가. 역시 자리가 편하니 비행이 스트레스가 아니다. 비즈니스 적금을 들던지 해야겠다. 이렇게 밤새 비행하고 개운한 착륙시간을 맞아보는 경험은 처음이다. 이 또한 감사한 일이다.

인천공항 출국장 나오는 길

인천공항은 멋은 그다지 없지만 언제 봐도 깔끔하다. 세계 그 어느 공항과 견주어도 압도적인 시설, 서비스, 시스템 등을 가지고 있다. 이제 내 나라다. 긴장을 좀 풀어도 된다. SKT LTE 표시가 귀국을 반겨준다.

돌이켜보면 많이도 다녔다. 로마-마드리드-그라나다-말라가-론다-세비야-리스본까지 멋진 시간이었다. 좋은 추억이 되겠지.

2025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여행기를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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