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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피서 남해행 1, 진주

2025. 7. 6

by 여기 저기

무척 덥다. 해마다 맞이하는 무더위지만, 항상 처음인 듯 지친다. 이제 시작인데 언제 9월이 오나. 왠지는 모르겠으나 집에서 온종일 에어컨을 틀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치 않다. 석유 한 방울 안나는 나라에서 이렇게 전기를 팡팡 써도 되나 싶다.


더위를 피해 남해섬으로 내려갔다 오려한다. 작년 남도 여행으로 남해를 2박 다녀온 후 G는 남해에 꽂혔다.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곳 남해의 매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올여름 이른 피서지도 일찌감치 남해로 결정해 놓았다.


남해로 향하는 길에 진주에 들러 하루 보내고 남해로 들어가려고 한다. 진주는 K에게 특별한 도시다. 그의 어머니 고향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진주 외곽 지역에서 자라셨고, 진주여중을 나오셨다. 중학교 때부터 시내로 나와 하숙 생활을 하셨던 거다. 내가 중학생 시절 즈음 외갓집은 진주 시내로 이사를 하셨다. 그래서 방학이면, 동생들과 이곳에 와서 며칠씩 지내곤 했다. 그때 걸었던 남강의 둑길이 아직 눈에 선하다.


골든튤립호텔 남강

난생처음 진주에서 여행객으로서 하룻밤을 보낸다. 이곳에서 고향집까지 한 시간 안쪽 거리라, 이곳에 오면 무조건 고향집으로 갔지 여기 머무를 일이 없었던 것이다. 진주성 옆 시내에 괜찮아 보이는 호텔이 있어 묵어 본다. 좁은 시내에 일본 비즈니스호텔 같은 소박 깔끔한 숙소다. 가성비 최고이니 재방문 의사가 충분하다.


제일식당

호텔 짐을 풀고 저녁식사를 나간다. 진주에 왔으니 비빔밥을 먹어야지. 그동안은 무조건 천황식당을 찾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중앙시장 안에 있는 작은 노포 제일식당으로 가려고 한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가 K를 데리고 오셨던 곳이다. 그곳이 가보고 싶었다.


시장 골목에 숨어 초행자들은 찾기 어렵다. 어린 시절 기억에 있는 그대로의 시장통 식당이다. 좁은 나무 계단을 올라 다락방 같은 곳에 앉아 식사했었다. 그 계단이 그대로 남아있다. 사춘기 중학생 때 오고 환갑이 되어 왔는데 이곳은 변한 게 없다. 세월의 강한 기운이 느껴진다.


이곳은 천황식당과 더불어 진주비빔밥 양대 산맥이다. 그런데 그 분위기와 맥락은 사뭇 다르다. 천황식당은 단아하고 깔끔하고 정갈하다. 제일식당은 서민적이고 포근하고 깔끔하다. 비빔밥의 맛은 더 말할 필요 없다. 자극적이지 않고 맛나다. 선지국밥도 개운하고 좋다. 여기도 별 다섯 개를 주지 않을 수 없는 맛이다. 하나 단점은 시장이다 보니 파리가 가끔 보인다. 쫒으며 먹어야 하는 번거로움은 여름철 단점이다


진주성과 촉석루

진주는 경상도 서쪽의 전략 요충지이다. 진주를 넘어서면 전라도 땅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임진왜란 당시 이곳 진주성에서 큰 전투가 두 차례 있었다. 1차 전투는 김시민 장군이 3,800명을 이끌고 왜적 30,000명을 상대로 싸워 이긴 그 유명한 진주대첩이다. 2차 전투는 다음 해인 1593년에 왜적의 총공세를 끝까지 견디지 못하고 진주성을 내어주는 슬픈 사건이다. 이때 의기 논개가 연회 중 적장과 함께 남강에 몸을 던졌다는 의암(義巖)이 이곳에 있다.

진주성은 남강을 끼고 있는 천혜의 방어성이다. 그 중앙 누각인 촉석루는 우리나라 3대 누각(경회루, 영남루, 촉석루)중 하나이다. 전시에는 전투 지휘소로, 평시에는 누각으로 연회나 모임을 하던 곳이다. 한 공간에서 먹고 놀다가 전쟁도 하고 참 대단한 다목적 시설이었다. 진주성 야경을 오롯이 보려면 다리를 건너 반대편으로 오는 것을 추천한다. 진주는 품위 있는 도시다. 마치 유럽의 도시가 주는 시간의 내공과 아름다움이 쌓여 있다.


마르탱

호텔 로비에 근처 맛집 리스트 안내가 있다. 그중 조식처를 찾다 발견한 브런치 카페인데 오픈시간이 9시 45분이다. 9시 30분도 아니고 10시도 아니고 40분도 아니고 45분이라니. 특이하지 않은가. 범상치 않은 디테일이 있는 곳 같다.


블로그에 1인 운영 카페라 음식 나오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G의 걱정에 눈 뜨자마자 오픈런을 한다. 호텔에서 걸으면 2-3분 거리로 무척 가깝다. 무뚝뚝한 여사장님 혼자 요리도 하고 음료도 만든다. 첫 손님으로 기다림 없이 오늘의 첫 요리를 차지한다. 오믈렛이 좀 달긴 했지만 정갈하고 맛있는 음식이다.


음악도 분위기도 주인장의 개성과 철학이 배어 있다. 소리가 좋아 올려다본 스피커는 OJAS. 약 14,000,000원 정도 하는 하이앤드 스피커다. 한곁에는 중고 LP판을 팔고 있다. 아주 매력 넘치는 카페다. B의 취향저격 카페다. 또 올 거다.


시내골목

아침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는 골목에서 진주시내의 변화를 본다. 낡은 구도심에 들어선 작은 가게들의 수준이 범상치 않다. 와인바, 카페, 일식집 등 들어가 보고 싶은 곳들이 많다. 아울러 오래된 시내 노포들도 보이고 더 머물고 싶게 만든다. 다음에 또 계획을 해야겠다.


삼천포시 해원장횟집

조식이 단출해서 금방 점심을 먹을 수 있겠다. 진주를 떠나 남해로 가자면 사천시를 지나야 한다. 사천은 삼천포의 현재 행정구역명인데, 삼천포 사람들은 아직도 삼천포라는 지역명을 고집한다. K도 잘 가다가 빠질 여유가 있는 곳, 삼천포가 더 정겹다.


국도를 빠져 조그만 어촌으로 들어가면 해원장횟집이라는 식당이 있다. 백합죽을 파는 곳이라 부드럽게 죽을 먹으러 왔다. 백합죽과 함께 삶은 홍합을 주신다. 식탁에서 바다내음이 확 올라온다. 바닷가에서 먹는 싱싱한 해물은 언제나 정답이다. 바다가 보이는 홀에 에어컨 독점하고 두 사람만 황제 식사를 한다. 백합죽의 감칠맛은 전라도의 그것에는 좀 못 미친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쿨한 아재가 되자.


삼천포시 커피 노매뉴얼

남해로 진입하는 삼천포대교를 지나기 전 삼천포시에 '커피부심' 있어 보이는 카페를 검색하고 간다. 이름하야 COFFEE NOMANNUAL. 여느 구도심에서나 보는 낡은 타일 건물 1층에 자그마한 카페다. 남자 주인장 혼자 운영하시는데 애플파이, 에그타르트, 치즈케이크, 초콜릿쿠키 등 디저트도 있다. 애플파이가 얇아서 먹기 편하고 맛있다. 따듯한 커피와 함께 먹는 애플파이가 맛없기도 힘들긴 한다. 커피가 맛있다.


이곳 주인장도 사근사근 친절하진 않다. 그렇다고 불친절한 것도 아니고 그냥 무뚝뚝이 기본 코드다. 곰살곰살 나긋한긋하지 못한 경상도 스타일이다. 진주와 삼천포를 경유하여 이제 종착 여행지 남해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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