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1년 반 정도 주말부부 생활을 했었다.
나는 오후 네 시에 퇴근하긴 했지만, 퇴근하고 잠자리에 들기까지 계속 긴장 모드. 이완할 시간이 없었다.
깨어있는 동안 계속 정신을 곤두세우고 회사에서는 일을 하고, 퇴근해서는 두 아이들을 돌봤다.
첫째는 다섯 살, 둘째는 두 살 시절로 손이 많이 필요했다. 내가 두 아이 저녁 먹이고, 씻기고, 이 닦이고 재워야 했다.
어머님이 아침부터 밤까지 도와주셨지만 최종 책임자가 나라는 무게감 때문인지 정신이, 영혼이 피폐했던 시절이었다.
나 혼자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고 모두가 나를 따돌리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위기였다.
물론 근거 없는 기분이었다. 긴장만 있고 이완은 없는 일상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피폐해져서 위기의 순간까지 갔던 거 아닐까.
차라리 유학 준비하던 시절엔 괜찮았던 것 같은데, 목표가 사라지고 그런 증상이 생긴 것 같다.
(유학을 준비하다가 올해 1월에 포기했다. 이 사연도 추후 따로 올릴 예정이다)
그런 기분이 피크였던 날, 외근 갔다 돌아오는 길에 회사 동료를 태우고 귀가하다 다른 지역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내 과실 100% 접촉사고였다.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 사고가 뭔가 멍했던 내 정신을 깨운 것 같기도 했다.
그날 밤, 아이들을 재워놓고 현요아 작가의 책 “나를 살리고 사랑하고”를 읽으며 눈물 콧물 펑펑 쏟으며 울었다.
돌아보니 그 정도로 바닥까지 갔었기 때문에, 아마 다시 치고 올라오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하며 이것저것 붙들었던 것 같다.
운동이나 악기를 배우고 싶은데 시간이 없으니 회사 점심시간에 피아노 레슨을 시작했고, 헬스를 끊어 점심시간에 다녔고, 새벽에 일어나 미타임을 가졌다.
무엇이라도 좋으니 늘 하는 생각을 하지 않고 다른 생각, 다른 도전을 하고 싶었다. 내 일상과 전혀 다른 어떤 것, 그게 피아노와 운동이었다.
책도 엄청 빌려봤다. 도서관 환경이 좋아서 서너 군데에서 열 권씩 빌려서 쌓아놓고 이것저것 읽었다. 그런 독서는 약간 랜덤 뽑기 같긴 했다. 이것저것 읽다 보면 내 마음에 울림을 주고 삶을 건드려 변하게 하는 책들도 한두 권은 만날 수 있었다.
결국 내 긴장뿐이던 직장과 육아 생활에 이완하는 시간을 갖게 해 준 건 남편이었다.
남편은 나와 비슷하면서도 반대의 성격적 특성이랄까, 그런 게 있어서 내가 육아 스트레스로 가득 차 있을 때 그게 아무것도 아닌 듯 바꾸는 마법을 부릴 줄 알았다. 내가 스트레스를 머릿속에 모래처럼 쌓아둔 고슴도치가 되면 남편은 웃음 한 번에, 아이들을 향한 사랑의 손길 한 번에 모래 무덤을 깃털 같은 먼지로 바꿔 날려버리고 고슴도치가 된 나를 다시 보들보들한 토끼로 바꿔주었다.
(*아 이거 너무 미화됐는데...... 푸핫)
지금 나는 정신 상태가 굉장히 양호한 편이다.
세상 사람들이 날 외면한다는 느낌이 자주 들었는데, 지금은 그런 기분이 안 든다.
그래서 이렇게 글도 다시 쓸 수 있게 된 것 같다.
육아를 하다 보면, 혹은 육아가 아니라 어떤 일이라도 나처럼 많은 책임으로 인해 휴식을 취하고 삶을 즐기는 방법을 잃어버리게 되면 길을 잃기 쉽다.
어떤 결정적인 해결책이 나오거나, 천천히 상황이 나아지기 전까지는 뭐든 붙잡고, 시도해 보면서 버티는 수밖에 없다.
다양한 시도와 대안들이 내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더라도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버티는 힘을 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내가 힘들었던 시절 이야기는 재미도 없고 특별하지도 않지만, 그 시간들을 어떻게 버텨냈는지 앞으로 기록하기 위해선 필요한 글이라 이렇게 적어본다.
뭔가 달리는 내 뒤로 쫓아오는 불길에 붙잡히지 않기 위해 뛰면서 이것저것 여러 가지 아이템을 모아 컬렉션을 만든 느낌이랄까.
브런치를 애용하는 독자분들 중에는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분들이 꽤 될 것이라 생각한다. 글 쓰는 거 좋아하고, 생각 정리하는 거 좋아하고 등.
그래서 내가 모은 아이템 컬렉션들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소망해 본다.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내 좌우로 치우치지 않은 고요한 삶을 살게 된 사람이 ”그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다 “고 고백하는 것처럼, 나도 그 시절의 내 삶을 부정하지 않고 안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5년, 10년쯤 지나서 “그 시절이 있었기에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라고 평온한 진심으로 그렇게 말할 수 있게 된다면 마음 가득 평온과 기쁨이 잔잔하게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