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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아일체

by 호방자

일주일에 한 번 등교 지도를 하는 날이다. 예전에 복장 단속이라 그랬다. 선도부가 이름을 부르면 학생 주임의 가차 없는 폭력이 날라오던 야만의 시절과 다르게 요즘은 이름만 적고 간다. 비가 오면 이 덜 야만적인 단속을 쉴 수 있는데 내가 하는 날에 유독 비가 많이 와서 부러움을 사고 있다. 어제도 예보에는 오늘 아침부터 비가 온다고 하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눈을 떴는데 고요하다. 토독토독,,,빗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부리나케 준비를 하고 학교에 다 와가는데 거짓말처럼 빗방울이 떨어진다. 아이들의 우산 숲 사이로 축하를 받으며 교무실로 들어왔다.



수업을 하다 보니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한다. 나는 비가 내리는 걸 심각하게 좋아하는 병이 있는데, 이 병은 아주 오래전부터 앓아 온 유서 깊은 것이며 그 전통만큼이나 정도도 깊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 나의 어머니는 비 오는 창 밖을 보며 소리지르는 나를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지적하셨다.



비가 오니 아침부터 학교 연못에 개구리가 운다. 토종 개구리의 꾸르룩 소리는 주로 낮에 들려온다. 그런데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 오전은 황소 개구리가 운다. 부왕~부왕~ 소리도 우렁차다. 이끼부터 연꽃까지, 소금쟁이부터 잉어까지 나름 완전한 생태계를 이룬 곳인데 이 외래종이 생태계를 망치는 게 아닌가 걱정이다. 황소개구리가 처음 들어왔을 때 온갖 토종 생물들을 다 잡아먹는다고 난리였는데 이제는 익숙해진 토종 포식자들의 먹잇감이 되었다고 한다. 여기도 가물치 한 마리면 되는데....



비가 오니 풀과 나무가 싱그럽다. 창 너머로 낙락장송까진 아니지만 자태가 아름다운 날씬하면서도 개성 넘치는 소나무가 창밖 풍경에 운치를 더한다. 끝 종이 치고 호흡기 건강을 위해 문을 열고 나와 깊이 숨을 들이마신다. 에어컨 바람을 빼내니 비 오는 날 특유의 습한 흙 내음이 폐부 깊숙이 자리 잡는다. 바람에선 낯선 청량함이 느껴지고 바닥에, 흙에, 나뭇잎에 부딪친 빗소리가 섞여 경쾌하니 타악기 삼중주가 따로 없다. 교무실로 향하다 잠시 멈추고 시선을 멀리 둔다.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공간을 메우지만 아름다운 장면을 담으려는 내 시야 안으로는 들어오지 못한다. 떨어진 빗방울은 잘도 튀어 오른다. 짧은 시간 눈과 귀에 오롯이 담는다. 심호흡하며 몸속에도 담는다.



고전문학에서 그렇게 설명하던 물아일체를 경험한 것 같다. 설명해도 애들이 공감해 줄진 모르겠지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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