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술을 먹지 않습니다

by 호방자

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소주 한 잔에 얼굴이 벌게지는 걸 보면 체질적으로도 맞지 않는다.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는데 즐거움의 크기보다 괴로움의 크기가 더 크다. 그럼에도 술자리가 생기면 의지와 상관없이 괴롭게 술을 마셨다. 나이 지긋한 선배님은 남자가 술을 못하면 사회생활이 힘들어진다고 조언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었다. 나는 술을 먹지 않으면서도 술자리에 끝까지 남아 사람들을 챙기고 얼굴도장을 찍으며 내 존재를 각인시켰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신기해하며 기억해 줬고 다음에도 불러 주었다. 관계는 그렇게도 맺어질 수도 있었다.



한해가 끝나가는 지금, 선생님들과 술자리를 했다. 친하지만 술자리를 함께할 경우는 흔치 않았기 때문에 귀한 시간이었다. 술을 한잔 걸치니 말들도 많아졌다. 자연스레 그동안 하지 못했던 진솔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술을 마시지 않는 나를 구박하며 서운해 하지만 내가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관계가 틀어질 리 없다. 나는 이제 술만큼은 내 마음대로 하고 싶다. 내 의지대로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을 때 사람은 행복하다. 원하지 않는 술을 마시면서 억지로 춤을 추고 노래하고, 상대의 반복되는 이야기를 들을 때 행복하지 않았다. 그때는 그래야 성공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확실하지도 않은 미래를 위해 지금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 지금 행복을 느끼는 것만큼 확실한 실존의 증거는 없다. 지금 나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자리를 만들고 함께 웃고 떠들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때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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