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 달리기

by 호방자

연말에 학기 말이 겹치면 극도의 피로와 스트레스가 찾아온다. 급격한 컨디션 저하에 잠을 설쳤더니 일주일 넘게 운동은 꿈도 꾸지 못했다. 오늘도 학교는 비상 계엄 수준의 다이내믹 코리아였고 여전히 몸은 힘들지만, 어두운 밤이 되자 목마른 사슴이 우물을 찾듯 나는 실내 달리기를 결심했다.



실외 달리기를 하지 않는 것은 컨디션 때문이기도 하지만, 행여 밤중에 야생 동물의 공격이라도 받으면 누구 하나 구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각박한 사회라지만 그래도 들개가 사람을 물어뜯는 걸 본다면 신고 정도는 해줄 측은지심을 믿는다. 그런데 그것도 사람이 있어야 가능한 법. 따뜻하고 안전한 헬스장을 선택했다.


내 달리기에는 슬픈 사연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수년 전 아이가 태어나고 극도로 예민 아씨가 되어 있는 아내와 투닥거림이 그치지 않던 시절, 잠깐이라도 숨을 쉬고자 배고픈 들개가 먹이를 찾듯 운동을 찾았다. 허락된 짧은 시간, 아이를 재운 밤에, 충분한 강도가 있어야 하며, 돈이 들지 않는 운동은 달리기밖에 없었다. 그토록 추웠던 겨울 강변을 고래고래 울분을 토하며 달렸다. 사람 없는 스산한 산책로에 후드득 새소리라도 나면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육두문자와 그 뒤에 찾아오는 허탈한 웃음, 간혹 사람이라도 보이면 동네 오빠 만나듯 반가웠다. 그때부터 틈틈이 달리다 보니 어느덧 러닝 붐이 불었고 이제는 외롭지 않게 무섭지 않게 달릴 수 있게 되었으나 오늘은 실내 달리기다.



간단한 스트레칭 후 살짝 걷다가 본격적으로 속도를 높여 준다. 오랜만에 하는 달리기라 무리하고 싶지 않다. 호흡이 점점 가빠지고 땀구멍이 열리기 시작한다. 유리창에는 어느덧 아저씨가 된 누군가의 눈동자가 명멸한다. 드디어 땀이 폭발하기 시작한다. 손으로 땀을 훔쳐 옷에 닦기를 수차례, 뻐근했던 다리도 어느덧 고통이 사라진다. 가빴던 호흡이 안정적으로 변하고 내가 달리는 건지 러닝 머신이 움직여주는 건지 모르는 사태를 맞이한다. 오늘 저녁 메뉴를 확인해 주는 텁텁한 트림도 어느새 산뜻하게 변하고, 중력을 거스르는 볼살 리프팅 때문인지 창문에 비친 아저씨도 며칠은 젊어진 것 같다. 무엇보다 학교에서, 집에서, 일 때문에 사람 때문에 생겼던 고통과 번뇌가 흐르는 땀과 내뱉는 날숨에 모두 빠져나간다. 허리를 펴고 전방을 바라보며 글쓰기 주제를 생각하며 경주마처럼 달린다. 달리면서 내 건강이 좋아진다는 상상을 한다. 심장은 쫙쫙 펌프질을 해대고, 빨라진 혈류에 몸속 나쁜 물질들이 씻겨 내려가고, 뼈와 근육은 더 굳세지고, 뇌가 깨끗이 청소되며 시냅스들의 연결이 견고해지고 있다 생각하면 운동의 효과는 배가 된다.



달리기,,, 그렇잖아도 신세지고 있는데 오늘은 글까지 한 편 쓰게 해줬으니 러닝화에다 절이라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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