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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게 이기는 것!

by 호방자

영화 ‘범죄와의 전쟁’ 마지막에서 최익현(최민식)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최형배(하정우)의 검거에 협조를 한다. 그 과정에서 총알 없는 총 하나로 악이 받친 최형배의 공격을 버텨낸 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조용히 읊조린다.



“내가 이겼다! 내가 이겼어!”


이 영화의 수많은 대사가 회자되지만 나는 유독 최익현의 찌질함이 잘 묻어나는 이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씻고 있었다. 갑자기 주방에서 우당탕 쨍그랑 소리가 난다. 아내가 정리를 하다 뭔가 잘못되었나 보다. ‘아,,,조심 좀 하지.’ 화가 오르지만 씻으면서 차분히 생각한다. 나가면서 첫 마디는 “괜찮아? 안 다쳤어?” 요거다. 스스로를 칭찬한다. 기특하다.



아내는 화가 많다. 힘든 일이 있는 날일수록 화가 나 있다. 그 화는 나를 오히려 진정시킨다. 진정된 마음으로 오늘의 참사를 분석해 본다. 오늘 일은 아내의 잘못이다. 그런데 아내는 나에게 짜증을 냈다. 평소 내가 아끼는 무거운 나무 도마 때문에 그릇을 깼다는 것이다. 도마가 무거워 제어를 못해 우당탕 이 사달이 났다는 것이다. 아내는 짜증을 내며 도마를 버리라고 한다. 당황스럽다. 도마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는데 도마가 뭘 잘못했지?? 적반하장의 태도에 나도 참지 못했다. 그래서 못 버리겠다고 했다.



그리고 3초 후 버리자고 했다. 그리고 버렸다. 이 도마는 앞으로도 싸움의 발화점이 될 것이다. 마음 아프지만 작별하는 게 좋다. 억울하지만 평화를 위해서는 자존심은 개나 줘야한다.


우리 엄마는 나 어릴 때 늘 그러셨다. 지는 게 이기는 거라고. 그래서 나도 오늘 조용히 최익현처럼 읊조려 본다.



“내가 이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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