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신이 났다. 세상의 절반인 엄마와 다른 절반인 아빠가 하원 버스를 함께 기다리고 있으니 그럴 법도 하다. 히터 빵빵한 버스에서 내린 아이의 이마는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고 앞머리는 촉촉하게 젖어 있다. 집으로 가는 몇 분 사이를 재잘재잘로 채운다. 오늘은 카드가 있다며 받고 싶은 사람은 손을 높이 들라 한다. 뭘 보고 썼는지 제법 문장이 길다.
엄마 아빠 고맙습니다. 사랑해요. 메리 크리스마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크리스바스다. 빵 터졌지만 굳이 고쳐주지 않았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므로.
크리스마스에는 케이크가 빠질 수 없다.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노래를 부른다. 아이는 오늘 폭탄을 터뜨리냐고 물어 본다. 폭죽을 말하는 것 같다. 폭탄은 안 터뜨린다고 하자 그럼 팥죽을 터뜨리냐고 물어 본다. 폭탄과 팥죽을 합치면 폭죽이 되긴 하다. 연속되는 웃음 공격에 정신이 혼미하지만 너무 웃어도 실례다, 아이는 케이크를 자르더니 요거트를 먹었다. 케이크는 거들 뿐이다.
밖이 춥다. 오늘 따뜻한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케이크를 먹을 수 있어 감사하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당연한 건 없다. 당연해 보이는 이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정호승의 시 속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를 떠올린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이 행복이 당연히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감사하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오늘을 기록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