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했지만 방학이 아니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같은 헛소리를 하려는 게 아니다. 방학을 했지만 난 여전히 바쁘다. 하필 아이의 방학과 겹쳤기 때문이다. ‘하필’이라는 말이 아이에겐 미안하지만 솔직한 나의 심정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은 어딜 갈 건지 물어보는 이 해맑은 아해를 실망시킬 수는 없다. 토이저러스는 못 가더라도 다이소 정도는 가야 한다. 만원이면 아이가 송구스러워 할 만큼 두 손을 채워 줄 수 있다. 최우선 구매 조건은 아이 혼자 집중할 만한 놀잇감인지 여부다. 아이는 정말 사랑스럽지만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히 필요하다.
다이소는 거리가 좀 되지만 걸어가기로 했다. 아이의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걸으면서 물가에 한가롭게 떠 있는 오리를 만나기도 했고 꼬리로 유영하는 물고기를 만나기도 했다. 차로 가길 원했던 아이의 요구를 깔끔하게 묵살한 아빠는 미안한 마음에 자꾸 말을 건넨다. “걸어가니까 오리도 보고 재밌지?” 다행히 아이는 오리만 봐도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순수하다.
길을 걷던 중 낯선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오신다. 자전거 금지 도로지만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므로 길을 비켜드리려는 순간,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멈춰 선다. 딸 가진 아빠들은 걱정이 많다. 아빠를 제외한 모든 남자들을 유해한 존재로 인식한다. 영화 테이큰은 단순 액션 오락물이 아니다. 내 딸에게 충분히 벌어질 만한 상황들을 집약시켜 보여 주는, 딸 가진 아빠들이 곁에 두고 가까이 해야 할 명작이다. 테이큰이 3까지 나왔는데 솔직히 3을 보면서는 그쯤 되면 딸이 외출을 자제하는 편이..... 다시 돌아와 할아버지는 대뜸 핸드폰을 들이미시며 좀 봐달라고 하신다. 얼마나 답답하셨으면 길 가던 생면부지의 나에게 부탁을 하셨을까 싶어 경계 태세
를 풀고 들여다 보았다. 다행히 어려운 건 아니었다.
얼마 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키오스크를 어려워하는 노인들을 배우려는 의지가 없다는 식으로 비판하는 글을 읽었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렇게 보아야 할 문제인가 싶었다. 노인들을 상대로 그런 것을 가르쳐 주는 곳이 있는가? 노인들이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삶을 살아 왔는가? 노화로 인해 전반적인 능력이 떨어졌는데 의지만으로 해결될 문제인가? 노인들에게 키오스크 적응이 의지를 가지고 배워야 할 정도의 중대한 문제인가? 가게마다 키오스크 방식이 달라 젊은이들도 버벅대는데 그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대부분의 노인들이 그러한 문제를 겪고 있을 텐데 국민성을 의심해야 하는 건가? 머리 속에서 질문이 꼬리를 물고 쏟아져 나왔다.
2040년경에는 전체 인구의 약 40%가 65세 이상이 될 것이라 한다. 내가 60, 70세가 되었을 때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핸드폰과 키오스크에 익숙한 지금의 내가 미래에도 잘 적응하고 있을까?
키오스크에서 헤매고 있는 어르신을 볼 때 순간 짜증이 날 수도 있다. 충분히 이해하지만 항상 그렇듯 남보다 나 자신을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급변하는 시대를 따라가지 못해 버벅대는 그들도 영민하고 기민하게 시대를 이끌었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키오스크에서 헤매는 그들 때문에 욱한 기운을 가라 앉히지 못하고 글까지 써야 했던 자신의 모습은 어떤지 묻고 싶다. 아무리 생각해도 글을 쓸 정도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