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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관리사무소

by 호방자

팩스로 급하게 보내야 할 서류가 있어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가야 했다. 그런데 아이 혼자서 집에 있는 건 무리다. 만화를 틀어 주었더니 쳐다보지도 않고 잘 다녀오라고 했다. 서둘러 도착한 관리사무소에는 여자 직원분이 안 계셨다. 이분도 딱히 친절한 건 아니지만 뒤쪽에 자리잡은 무뚝뚝한 아저씨들보다는 말 붙이기가 훨씬 낫다. 할 수 없이 컴퓨터만 응시하고 있는 아저씨들께 부탁을 드렸다. 한 분이 담배를 챙기시면서 자기 컴퓨터에서 출력하라고 일어나신다. 팩스도 보내야 한다고 했더니 다른 아저씨가 직접 일어나셨다. 그런데 뭐지, 이 새로운 형태의 친절함은? 무뚝뚝한데 왜 친절하지? 상냥하지는 않지만 차근차근 다 알려주신다. 일을 마치고 정해진 비용을 지불하려 했는데 그냥 가라 하셨다. 심지어 머신에서 커피도 내려 먹으라고 강권하셨다. 예상치 못한 친절 공격에 정신을 차릴 수 없어 홀린 듯 커피 한 잔을 내렸다. 내가 드릴 수 있는 건 배꼽 인사뿐.


사실 아침에 일어나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친절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오늘 보낸 서류도 내가 원해서 하는 것이므로 짜증보다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마음이 편해졌다. 누군가의 친절로 생각이 바뀌고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니, 친절의 힘은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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