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도서관에 내려왔다. 규모는 작지만 읽을 만한 책들이 꽂혀 있다. 갑자기 60권짜리 만화 삼국지가 눈에 들어왔다. 27만 원,,,당시 꽤 큰 돈이라 학교에 가져와 읽는 친구들을 부러워 했었다. “삼국지 세 번 이상 읽은 사람과는 상대하지 말라.”는 이 유명한 판촉 멘트는 당시 우리 어머니들의 교육열에 불을 질러 한 질씩 들여놓곤 했던 책이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나에게 27만 원은 여전히 큰 돈이다. 때마침 방학이기도 하니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다시 읽어 보고 있다.
어린 시절 삼국지를 좋아했다. 지금처럼 다양한 콘텐츠가 없었기 때문에 아주 먼 옛날 중국 땅의 이야기가 남자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책, 만화, 게임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되어 내 정서를 지배했던 것 같다. 관우가 화용도에서 조조를 죽이지 못한 것이 너무도 분했고, 유비가 삼국을 통일하지 못하고 죽었을 때 책을 읽을 동력을 잃었다. 그래서 유비가 죽은 후의 이야기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유비, 조조, 손권 중 당연히 유비를 좋아했다. 유비를 중심으로 서술된 소설이므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조조와 달리 인의와 덕을 중시하는 모습, 인품에 반한 인재들이 충성을 다하는 모습은 사나이 마음을 끓어오르게 만들었다.
나는 삼국지를 세 번 이상, 그보다 훨씬 많이 읽었음에도 충분히 상대해 볼 만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유비의 인품, 제갈량의 지략, 관우 장비 조운의 의리와 충성심 등 좋은 사람이 가져야 할 덕목들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 그대로 실천은 못하더라고 하지 말아햐 할 짓을 안 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이 만큼이라도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방대한 분량의 책을 끈기 있게 읽은 덕에 지금도 책을 멀리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삼국지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