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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by 호방자

지독한 감기를 앓았다. 최근 몇 년간 크게 감기를 앓은 적이 없어 나름 자부심이 있었는데 이번엔 처참하게 으깨졌다. 관우의 오만함으로 인해 촉의 멸망이 시작된 걸 확인하자마자 그 전철을 그대로 밟았다. 몸이 안 좋다는 보고를 받았음에도 무리하게 근육 정벌을 나갔다가 대패하고 말았다.



‘운수 좋은 날’에서 김첨지가 아픈 아내에게 약을 사 먹이지 않는 이유는 병이란 놈에게 약을 주어 보내면 재미를 붙여 자꾸 온다는 신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어이없지만 나 역시 같은 신조를 가지고 있어 감기 정도는 약 없이 버티는 편이다. 그런데 사실 김첨지도 돈이 없어 약을 사 먹일 형편이 안 되었던 것일 뿐,,, 며칠 동안 아세트아미노펜에 취해 좀비처럼 기어다니다 이제야 밀린 숙제를 한다. 외려 방학하고서 글을 더 못 쓰게 되는 이 역설은 온전히 나의 어리석음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절실히 느낀 것은 건강에 대해 과신하지 말고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기울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기다려 온 방학을 며칠을 날려버렸다. 영양제 챙겨 먹고 꾸준히 운동해도 스트레스 앞에 장사 없다. 몸이 안 좋으면 무리하지 말고 쉬어야 한다. 최고의 휴식은 양질의 수면이다. 스트레스 풀겠다고 늦게까지 핸드폰이나 하면서 몸을 괴롭히고 그 죄책감을 운동으로 만회하겠다고 무리하다 이 사달이 났다.



삼국지를 보면 전쟁에 패한 장수는 읍참마속 하기도 하지만 살려주어 후에 공을 세울 기회를 주기도 한다. 내 목을 벨 수는 없으니 기회를 주련다. 후에 보란 듯이 공을 세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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