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바람이 많이 불었다. 산책로를 걸으니 매서운 추위에 뒤통수가 아려왔고 얼굴은 칼에 긁힌 듯 따끔했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중무장한 채 씩씩하게 걸음을 내딛으신다. 산책로 주변 운동기구에는 이미 내가 끼어들 자리가 없다. 날씨가 춥거나 말거나 어르신들은 운동하신다. 그것이 그분들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문학 작품을 가르치다 보면 ‘민중의 건강한 생명력’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등장한다. 건강한 생명력이라는 말이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다 오늘 산책을 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추운 날씨에도 산책을 나와 운동하고 대화를 나누는 어르신들의 일상, 그 일상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건강한 생명력 아닐까. 일제의 폭압, 전쟁의 비극, 독재의 압제 속에 맞서 싸웠던 사람들도 결국 자신의 소중한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싸운 것 아닐까?
나와 같은 민중들의 소망은 소박하다. 건강하게 일터에 나가 노동하고, 가족들과 TV 보며 맛있는 거 먹고, 힘들지만 가끔씩 이런 게 행복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삶. 그런 소소하고 행복한 일상이 방해받지 않고 모두에게 허락되길 바란다. 그것이 방해받는 날엔 민중들은 또다시 들불처럼 일어날지 모른다. 바람 불어 누워도 다시 일어나는 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