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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단상 15. 러셀처럼 앞으로 나아가기

by 여철기 글쓰기


비개발자인 제가 개발을 시도한다는 것은, 사실 다소 무모한 도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호기심에서 출발했어요. 버튼 하나만 누르면 자동으로 결과가 나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손을 대어 보니, ‘성공’이라는 단어보다 ‘에러(error)’라는 붉은 문구가 훨씬 더 자주 제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코드를 돌리면 금세 무너지고, 잘 작동하던 기능이 어느 순간 이유도 모른 채 멈추곤 했습니다. 때로는 몇 시간을 공들여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아, 마치 처음보다 더 뒤로 물러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어요. ‘정말 퇴보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시도하면 조금씩 길이 열렸습니다. 어제 실패했던 부분이 오늘은 작게나마 작동하고, 한 줄의 수정이 전체 흐름을 바꾸어 놓기도 했습니다. 조그만 성과가 쌓일 때마다,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해보길 잘했다는 안도감이 찾아왔어요.


그 과정에서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개발자들이 매일 마주하는 수많은 오류와 시행착오가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요. 문제를 풀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수십 번의 실패 속에서 작은 가능성을 건져내는 노력이 쌓여야만 결과물이 나온다는 사실 말입니다. 저는 그 고단함의 극히 일부만 경험했을 뿐인데도,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개발자분들의 노고를 조금이나마 체감할 수 있었어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개발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길을 가다 보면 크고 작은 장애물이 반드시 나타나지요. 중요한 것은 그것을 만났을 때 포기할 것인지, 아니면 묵묵히 견디며 돌파할 것인지의 선택입니다. 끝내 밀어붙이는 분들만이 결실의 달콤함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겨울 산행에서 쌓인 눈을 처음 헤치고 나가는 사람을 ‘러셀(Russell)’이라고 부릅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장 앞에서 걸으며,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밀어내고 길을 만듭니다. 그렇게 생긴 길 위로 뒤따라오는 이들은 조금은 수월하게 걸을 수 있지요.


저는 지금의 제 노력이 작은 ‘러셀’과 같기를 바랍니다. 한 줄의 코드가 고쳐지지 않아 몇 시간을 허비하더라도, 다시 시도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실패가 쌓여도 결국 성과가 나온다는 믿음을 놓지 않는 것. 그것이 저만의 러셀이자, 삶을 살아가는 태도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일상도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 눈앞의 장애물이 너무 커 보이더라도, 그것이 영원히 가로막는 벽은 아니에요.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밀고 나아가다 보면 결국 길은 열립니다. 그리고 언젠가 뒤를 돌아보면, 그 길을 함께 걸어온 이들이 감사의 눈빛을 건네줄지도 모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성공의 계획이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나아가는 러셀의 의지입니다. 차갑고 무거운 눈더미 속에서도, 결국 길을 만들어내는 힘. 그것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붙들어야 할 가장 소중한 태도가 아닐까요.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러셀이 되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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