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와 평가위원이 동시에 좋아하는 문서의 비밀 (총 5편) -
2024년 11월 어느 날, 한 스타트업 대표가 제게 물었습니다.
"왜 우리 과제는 맨날 떨어지나요? 기술은 정말 좋은데..."
그의 계획서를 펼쳐보는 순간, 3초 만에 이유를 알았습니다.
패턴이 없었거든요.
탈락하는 계획서의 공통점
10년간 1,000개가 넘는 R&D 연구개발계획서를 봤습니다. 탈락한 계획서들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었어요.
내용은 훌륭합니다. 기술도 혁신적이죠. 하지만 평가위원이 읽는 순간, 미간을 찌푸립니다.
"뭐가 핵심이지?" "어디서부터 봐야 하지?" "이게 왜 여기 있지?"
평가위원 한 명이 하루에 봐야 하는 계획서는 평균 20~40개. 30~50페이지 문서를 5분 안에 판단해야 합니다.
불가능하죠? 그래서 그들은 읽지 않습니다. 대신 패턴을 인식합니다.
AI는 어떻게 1초 만에 100페이지를 읽을까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 하나.
AI도 똑같습니다.
ChatGPT에게 100페이지 계획서를 업로드하면, 1초 만에 요약을 뱉어냅니다. 어떻게 가능할까요?
AI는 글자를 읽지 않습니다.
이렇게 작동합니다 :
[1단계] 글자를 숫자로 바꿉니다
"안녕하세요"
→ [0.23, 0.87, 0.12, 0.65, 0.34, ...]
AI는 문장을 토큰(token)이라는 작은 조각으로 쪼갠 뒤, 모든 단어를 수백 개의 숫자 조합으로 변환합니다. 이걸 "벡터=단어를 좌표로 표시한 지도"라고 부르죠. 마치 음악 파일이 MP3로 압축되듯이요.
[2단계] 패턴을 찾습니다
AI는 인터넷의 수천억 개 문서를 미리 읽었습니다. 그래서 압니다.
"R&D 계획서" 다음엔 보통 "기술개발 목표", "연구개발 내용", "추진 체계" 같은 단어가 온다는 것을.
"문제" 다음엔 "해결", "결과", "효과"가 따라온다는 것을.
[3단계] 즉시 판단합니다
패턴 일치도 85% → "좋은 문서"
패턴 일치도 30% → "읽기 어려운 문서"
사람은 한 글자씩 읽습니다. AI는 패턴으로 문서를 스캔합니다.
속도 차이가 무려 1,000배입니다.
충격적 진실 : 인간 뇌도 똑같다
자, 여기서 뇌과학의 반전.
인간 뇌도 AI와 똑같은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인지심리학에서는 이걸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라고 부릅니다. 뇌는 에너지를 아끼려고 합니다.
낯선 정보를 처리할 때 : 7배 더 많은 에너지 소모 익숙한 패턴을 인식할 때: 자동모드 작동
평가위원이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100개 계획서를 본다고 상상해보세요.
10시쯤 되면 뇌는 이미 지쳐있습니다. 그때부터 뇌는 생존 모드로 전환됩니다.
"이 문서, 익숙한 패턴인가?" "빠르게 이해할 수 있나?" "아니면 에너지 낭비인가?"
패턴 없는 문서 = 에너지 낭비 = 탈락
이건 평가위원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인간 뇌의 기본 설계가 그렇습니다.
평가위원은 읽지 않는다, 패턴을 인식한다
실제로 제가 평가위원으로 참여했을 때 경험입니다.
오전 10시 첫 5개 : 꼼꼼히 읽습니다. 메모도 하고, 장단점을 따집니다.
오후 2시 20번째 계획서 : 목차를 훑습니다. 핵심 페이지만 봅니다.
오후 4시 40번째 계획서 : 솔직히 말하면, 핵심 키워드 위주로 판단합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평가위원도 사람입니다. 100개를 다 똑같은 열정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뇌는 자동으로 패턴 인식 모드로 전환됩니다 :
구조가 명확한가? ✓
숫자가 보이는가? ✓
표와 그림이 있는가? ✓
핵심이 앞에 있는가? ✓
4개 다 체크되면 : "오, 이건 제대로 쓴 계획서네"
1~2개만 체크되면 : "음... 다음 장 넘어가자"
잔인하지만 사실입니다.
패턴이 모든 것을 바꾼다
같은 기술, 같은 내용인데 표현만 바꾸면 점수가 달라집니다.
[문서 A : 패턴 없음]
우리 회사는 오랜 연구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이 기술은 여러 장점이 있습니다.
먼저 성능이 우수하고, 비용도 절감되며, 품질 향상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보이고 고객 반응도 긍정적이었습니다.
평가위원 반응:
"핵심이 뭐지?"
"구체적인 게 하나도 없네"
"다음 장..."
예상 점수 : 62점
[문서 B: 패턴 있음]
【문제】
현재 A사 생산라인 불량률 2.3%
→ 연간 손실 3억원
【해결】
AI 기반 실시간 검사 시스템 도입
→ 불량 감지 정확도 97.8%
【검증】
6개월 시범 운영 결과
- 불량률: 2.3% → 0.8% (65% 감소)
- 검사 시간: 3초 → 0.5초 (83% 단축)
【확장】
전 산업 적용 시 시장 규모 500억원
평가위원 반응 :
"한눈에 보이네!"
"숫자가 명확해"
"이건 진짜 계획이 있어"
예상 점수 : 91점
같은 기술인데 29점 차이
두 문서의 차이가 뭘까요?
기술력? 아닙니다. 경험? 아닙니다. 예산? 아닙니다.
패턴입니다.
문서 B는 :
구조가 명확합니다 (문제→해결→검증→확장)
숫자가 구체적입니다 (2.3%, 3억, 0.8%)
비교가 명확합니다 (Before → After)
시각적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평가위원의 뇌는 이걸 보는 순간 : "아, 이 사람 제대로 준비했네. 신뢰할 수 있어."
무의식적으로 판단합니다.
AI든 사람이든, 패턴이 왕이다
정리하겠습니다.
AI는 패턴으로 문서를 읽습니다 / 글자를 숫자로 바꿔서 패턴 매칭
인간 뇌도 패턴으로 판단합니다 / 에너지를 아끼기 위한 생존 전략
평가위원은 20~40개를 봐야 합니다 / 패턴 없으면 = 읽기 힘듦 = 탈락
패턴 하나로 29점이 달라집니다 / 같은 내용, 다른 표현
오늘의 한 문장
"AI가 좋아하는 패턴 = 인간이 이해하기 쉬운 패턴 = 선정되는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