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장미는 5월에 핀다고 한다. 봄의 끝자락, 햇살이 가장 부드러워지는 시기에 세상에 나와 온갖 시선을 받는 꽃. 그래서 사람들은 장미를 ‘꽃들의 여왕’이라 부르고, 그 절정의 순간을 기다린다. 하지만 얼마 전, 나는 10월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한 송이 장미를 보았다.
이미 계절은 가을의 깊숙한 문턱이었다. 코트 깃을 세워야 할 만큼 선선했고, 나뭇잎들은 이미 붉게 물들어 떨어지고 있었다. 그런 길목에서 유난히 또렷하게 피어 있는 붉은 장미 한 송이를 마주했다. 순간 나는 걸음을 멈췄다.
‘지금에서야 왜 피었을까?’
‘늦게 핀 걸까, 아니면 자기 때를 알고 있는 걸까?’
사람의 인생에도 이런 시차가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봄처럼 빠르고 화사하게 피길 바란다. 대학을 졸업하고, 남들보다 먼저 자리를 잡고, 이름을 얻고, 돈을 벌고, 사랑을 이루길. 세상의 속도에 맞춰야 한다는 듯 바쁘게 달려간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계절을 거슬러 피어난다. 모두가 잎을 떨구는 때에야 비로소 자신의 꽃을 틔운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보고 ‘늦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늦은 걸까? 아니면, 다른 계절에 피는 자신만의 리듬을 가진 걸까?
나는 그 10월의 장미를 한참 바라보다가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쩌면 인생에서 ‘제때’란 건 없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20대가 봄이고, 누군가에게는 50대가 봄일 수 있다. 어떤 이는 서른 즈음에 불타는 장미로 피어나고, 또 다른 이는 긴 겨울을 지나 마흔에야 꽃봉오리를 연다.
생각해보면, 봄에 피는 장미는 많지만 가을에 피는 장미는 드물다. 드물다는 건,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다는 뜻이다. 모두가 달릴 때 멈춰 서서 자신만의 속도로 걷는 사람, 모두가 끝이라고 말할 때 시작하는 사람, 그런 이들은 계절에 상관없이 피어난다.
그날 본 장미는 다른 꽃보다도 강해 보였다. 아침의 찬 공기, 낮의 건조한 바람, 밤의 서늘한 기운 속에서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 존재만으로 충분히 아름다웠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계절에 피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남의 계절에 뒤늦게 서 있는 걸까?”
정답은 없겠지만, 예전 같으면 ‘나는 늦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이 계절에 피는 나도, 그 장미도, 그냥 자기 시간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누구나 제때를 놓칠까 두려워하지만, 사실 인생의 시계는 각자 다르게 흘러간다. 어떤 시계는 빠르고, 어떤 시계는 느리다. 중요한 건 그 시계의 속도가 아니라, 그 안에서 내가 얼마나 내 계절을 사랑하며 살아가느냐다.
이제는 늦게 피어도 괜찮다고, 조금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을의 바람 속에서 피어난 그 장미처럼, 나도 언젠가 내 시간에 맞춰 피어나면 된다고.
10월의 장미는 시기를 잘못 안 게 아니다.
그저, 자신이 피어야 할 때를 알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