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길에 제대로 미끄러졌어요
"적어도 일주일에 3번은 운동을 해야지."
집에서 주로 책상 앞에 앉아만 있는 와이프가 염려되었는지 스크린 골프를 하고 와서 4시가 넘었는데 불현듯 둘레길 운동을 가자고 한다. 남편이 입버릇처럼 말했던 "산에서는 해가 일찍 진다"면서 돌아오는 길은 괜찮을까? 염려를 하면서 못이긴 척 따라 나섰다.
해를 가린 나무들이 쭉쭉 뻗어있는 주변은 아직도 하얗게 눈이 쌓여 있었고 간간이 눈 밑으로 드러나는 빙판을 보면서 내려올 때는 어느 쪽으로 내려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올라갔다. 눈이 내린 이후 운동을 좋아하는 분들 외에는 많은 분들이 둘레길 운동을 하지 않았는지 발자국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남편이 즉석에서 만들어준 나뭇가지 막대를 스틱 삼아 미끄러운 길은 남편을 붙잡고 무사히 목적지인 술 테마 박물관까지 도착했다. 동네에서 진입할 때는 평길인데 둘레길에서 진입하려니 경사가 심한 오르막길로 넓은 진입로에 하얀 눈이 쌓여있는 모습이 눈썰매장으로도 손색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게 눈길을 헤치고 언덕을 올라서니 확 트인 주변환경과 잘 가꾸어진 잔디밭, 아름다운 조경과 편의시설 등이 밝은 햇살과 함께 어우러져서 산으로 아늑하게 둘러쌓인 멋진 경관의 술 테마 박물관이 한 눈에 들어왔다.
여름에는 넓은 잔디밭에 설치되어 있는 곳곳의 테이블에 가족이나 지인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서 간식을 펼쳐놓고 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주차장 시설이 넓게 마련되어 있어서 주변의 많은 분들이 애용하는 장소라는 것도 한 눈에 알 수 있다.
되돌아오기 위해 언덕을 내려와야 하는데 초입에 미끄러져서 살짝 엉덩방아를 찧었다. 내 소리에 놀란 남편이 뒤돌아보고 내민 팔을 잡고 무사히 내려왔다. 다 내려왔다 생각하고 남편의 팔을 놓자 남편의 발걸음이 빨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이내 몇 걸음 못가 미끄러져 "쿵!"소리와 함께 뒤로 벌러덩 누워버렸다.
엉덩이, 등, 머리를 순서대로 찧고나서 잠시 누워 있는데 노인들이 눈길에 미끄러지면 사망을 하거나 뇌출혈의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쓰리쿠션을 제대로 한 셈이다.
"그래서 방심하면 사고가 나는 거야. 다 왔다 생각하고 긴장을 푸는 순간 미끄러졌구만!"
남편의 말이 맞았다. 무사히 다 내려왔다 생각하며 긴장을 놓는 순간 미끄러졌으니까.....
남편이 머리는 괜찮으냐고 묻지만 목과 등, 허리가 살짝 불편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아서 며칠 힘들겠구나 싶었다. 둘레길 다녀온 뒤 이틀은 많이 불편했으나 사흘째 되는 오늘은 충격을 받았던 몸 상태가 많이 풀려서 다행이다.
오후에 오랫만에 지인을 만나러 나갔는데 그 분도 등산길에 미끄러져서 골절이 되었다며 기브스를 하고 있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부모를 염려하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몸 관리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하고 절대 안전에 만전을 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의를 했음에도 일어나는 사고에 대해서는 할 수 없는 일이나 할 수 있는 한 노력은 다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