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동기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서 핸드폰을 보니 대학 동기에게 전화가 와 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수면에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 무음으로 해놓고 자기 때문에 전화 소리를 듣지 못해 이른 시간이지만 문자를 넣어 두었다.
"어젯밤 전화했었네. 그 시간이면 나는 잠자리에 든 시간이거든~~"
다른 때 같으면 문자를 보자마자 전화를 했을 텐데 상황을 감지한 듯 문자만 보냈다. 그 문자의 내용도 우리가 짐작하고 결정할 내용이 아무것도 없는데 앞서가는 친구가 안타까웠다.
작년 기간제 학교에서 만난 동기다. 나는 대학 동기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출근해서 교무실에 들어서니 커피를 마시고 있던 동기가 나를 보자마자 아는 체를 한다. 대학 때 얼굴이 그대로 있다며
"야, 그 때 ㅇㅇㅇ이 둘이지 않았어? ㅇㅇ반이었던 ㅇㅇㅇ은 내가 잘 아는데 너는 무슨 반이었어?"
"나는 ㅇㅇ반이었지."
학교를 오가며 내 얼굴을 많이 보았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본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동기였으나 졸업 후 40년이 훌쩍 넘었음에도 그동안 쭉 이어온 친구관계처럼 스스럼없이 대하는 친구가 성격이 참 좋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성격 좋은 또 하나의 이유가 일찍 등교하는 아이들을 관리해야 할 아침 시간에 교무실에서 교감, 실무사들과 너스레를 떠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오랫동안 근무했던 지역이니 서로 잘 아는 관계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이후 올 교육청 보결교사로 함께 활동하면서 배정받은 학교에서 동기와 바톤을 이어받느라 두어 번 만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에도 동기의 모습을 보면서 의아해 했던 것은 나는 전혀 모르는 후배에 관해서 부정적인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작년에 한 번 봤다고 나름 친분을 느껴서려니 이해했다.
동기가 말하는 그 후배는 나름 목표가 있어서 일찌기 명퇴를 했다는 말을 교육청 보결교사 첫 모임 때 본인에게 잠깐 들었었다. 예쁘장하고 나름 능력이 있어보이는 후배라고 생각했었는데 동기는 왜 그렇게 후배를 밉게 보았을까? 의문이 일었으나 작년 교육청 보결교사 활동을 함께 하면서 서로 잘 아는 사이라고 하니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명퇴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이후 작년까지는 예제 학교에서 불러주어 개인적으로 계약을 맺고 기간제교사를 했기 때문에 올과 같은 경험은 처음인 셈이다. 무엇이든 장단점이 있으나 교육청 소속 보결교사 팀은 총 11명으로 마치 현직 시 동학년 교사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말 한마디라도 서로에게 힘이 되고 정보를 제공해주는 분위기면 좋을 텐데 갑자기 잦은 전화를 해서 듣기 거북한 남말을 해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었다. 그런데 거듭될수록 스트레스가 쌓이고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결국 동기의 전화를 피하게 되었다. 그것도 한 번 전화를 하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한 말을 반복하는 치매가 따로 없다. 우리 딸 같았으면 즉시 반문했을 것이다.
"엄마, 아까 그 말 한 거 알아?"
좋은 말도 여러 번 반복하면 듣기 힘든데 그것도 남말을 반복해서 해대는 동기에게
"야, 그 말 여러 번 반복한 거 알아? 그리고 내 이야기만 하자."라고 말하고 싶은 욕구가 목까지 차오름에도 차마 말은 하지 못하고 주로 듣는 입장에서 전화를 끊고 나면 동기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동기가 그런데는 이유가 있겠지.... 하고.
잠자코 듣고만 있던 내가 한 번씩 추임새를 넣어서
"나는 그럴 경우 그런가보다 하는데....."
라고 했던 말도 그 동기에게는 귀에 거슬리고 마음을 언짢게 하는 말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어쩌랴. 인내에 한계를 느낄 때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동기의 남말에 폭발할 것 같은 심정일 때 나를 다잡기 위해 한 번씩 했던 말임을 동기는 알기나 할까?
출근을 했을 텐데도 그리고 잠은 몇 시에 자는지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서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는... 똑같은 말을 끊임없이 반복하던 동기가 요즘에는 전화가 없다. 마치 스토커처럼 전화를 해대더니 자신과는 맞지 않는 친구라고 생각했는지 그렇다면 고마운 일이다.
이 사람 저 사람 돌아가며 흉을 보던 그 동기가 또 그 누구에게 나에 대해서 입에 거품을 물고 흉을 볼 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전혀 상관없다. 누구나 털어서 먼지 안 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흉 볼 일이 전혀 없는데 그저 내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다.
동기를 탓할 일도 없고 남말에 거품을 무는 그 동기에게 나름 이유가 있겠지 이해하고 싶다. 스토커처럼 또 계속 전화가 온다면 견딜 수 없는 일이 될 테지만 상대가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파악했는지 연락이 없는 그 동기에게 되려 고맙다.
얼굴 볼 기회가 생기거든 서로 웃으며 가볍게 인사하는 관계로 지내고 싶다. 부디 건강하게 잘 지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