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을 지켜줄 호구
영리하고 온순해서 우리집을 찾는 많은 사람들과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코코가 가고 난 뒤 우리집을 지켜줄 강아지 한 마리 분양받는다는 소식에 지인이 호구를 소개시켜 주었다.
우리 동네의 호구들은 다리가 매우 짧고 눈도 보이지 않을 만큼 유난히 어둡고 정신없는 호랑이 무늬로 심난하게 생긴 녀석들만 보아서인지 호구라는 말을 듣고 내가 반대했었다. 분양받을 거라면 이번에는 하얀색이나 밝은 누렁이로 진돗개 종류를 알아보면 어떻겠느냐고 남편에게 제안했었는데 지인이 키가 크고 멋진 강아지라고 했단다.
사진을 찍어서 보내달라는 부탁에 다른 때 같으면 곧바로 사진을 찍어서 보냈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지인이 이번에는 얼마나 바쁜지 소식이 없다며 토요일 저녁 볼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30분 거리의 호구가 있는 집에 들렀다.
좋은 강아지여서 동네에 강아지를 예뻐하는 사람이 있으니 지인이 집에 없더라도 언제든 빨리 데리고 가라는 연락을 받았단다. 그래서 깜깜한 밤임에도 불구하고 일단 강아지의 모습을 확인하고 데려와야겠다며 서둘러 호구를 보러 간 셈이다.
몇 달 동안 주인 없는 빈 집으로 호구 홀로 집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주인이 서울에서 내려와 집을 짓고 살다가 몇 년 안 되어서 말기암으로 다시 서울로 올라가신 상황이라며 이후 근처에 사는 지인이 호구를 관리해오고 있었단다.
깜깜한 밤에 남편이 다가가자 동네가 떠나가도록 짖기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해졌다 싶더니 주머니에 넣어간 군고구마를 건네주자 처음에는 격하게 거부하던 호구가 이내 받아먹고 손바닥까지 핥았다며 배가 많이 고파있는 상태더란다. 차 안으로 돌아온 남편이 모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은 말투와 상기된 모습으로 핸드폰을 켠다.
“강아지가 마음에 쏙 들어. 고구마를 먹는 동안 동영상을 찍었으니까 봐.”
그런데 안타깝게도 저장을 안 한 것 같다며 동영상이 없어졌단다.
“곧 볼 건데 상관없어. 당신이 봤으면 됐지. 그리고 마음에 들었으니 내 마음에도 들 거야.”
고구마를 먹는 동안 쓰다듬어주고 왔다며 내일 오후에 데리고 오겠단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데리고 오고 싶지만 깜깜해서 위험할 수도 있으니 내일 밝을 때 남편의 밴을 가지고 가서 데리고 와야겠단다. 그리고 호구의 이름은 진돌이가 있으니 호돌이로 짓잔다. 두 녀석 다 암놈인데 진순이, 호순이로 지으면 좋겠지만 이미 진돌이는 주인들에 의해서 지어진 이름이고 그렇다면 호돌이도 괜찮겠다 했다.
동네에서 볼 수 있는 짧은 다리 호구가 아니라 쭉 뻗은 다리의 멋진 호구라니 남동생도 그랬었다.
“누나, 호구가 멋진 개야. 진돗개구.”
그래서 검색을 해보니 내가 원했던 진돗개로 양 귀가 쫑긋 세워져 있고 잘록한 허리에 길쭉한 다리로 키가 꽤 큰 종이었다. 주인에게 충성한다는 내용을 보고 남달리 정성을 다하는 남편이 매우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오후 남편은 만에 하나 모를 위험을 대비해서 진돌이의 입마개와 목줄, 코코 집 등을 챙겨서 출발했는데 돌아오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지인이 너무나 바빠 없는 상태에서 데리고 왔다며 도착 후 호돌이를 차에서 내리려 하는데 진돌이가 난리가 났다.
행여라도 진돌이에게 닿기라도 하면 냉큼 물어버릴 기세다. 오는 동안 목줄에 꼬인 다리와 입마개를 풀어주려고 남편이 기를 쓰는데 입마개를 씌웠음에도 남편을 공격하며 손도 못 대게 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불안해서 집으로 들어왔다. 결국 호돌이에게 두어 군데 살짝 물렸다며 남편은 호돌이가 불안해서 격하게 경계하는 모습이었다고 했다.
자리를 잡아주고 입마개를 풀어준 다음 먹이와 물을 갖다주자 입마개를 쓰고 얼마나 짖어댔는지 이빨에 피가 나 있다. 남편이 다가가서 쓰다듬어주려는데 거부하며 먹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한 시간 후 다시 나간 남편이 호돌이가 먹이를 다 먹었다며 다시 갖다주었다고 한다.
호돌이가 우리집에 온 지 사흘째 되는 날이다. 퇴근하고 집에 가니 남편이 반가운 소식을 전한다.
“이제 호돌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 그래서 코코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모두 갖다주었더니 혼자서 잘 노네. 머리가 아주 영리해.”
남편의 말을 듣고 호돌이에게 가보니 주변에 굵직한 변이 4군데나 늘어져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처음의 거칠고 꾀재재한 털이 아닌 매끈하고 반들거리는 호돌이의 모습으로 변해 있는 모습을 보고 이젠 살만 조금 찌면 되겠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변을 많이 본다는 것은 잘 먹고 있다는 거니까 금새 살 찔 거야.
다가가자 꼬리를 흔들며 내민 손을 핥는 모습으로 봐도 그렇고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는 것은 심적으로 많이 편안해진 상태이며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는 뜻이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남편이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캄캄한 밤에도 머리에 써치라이트를 켜고 나가서 호돌이를 돌보니 빠르게 적응한 셈이다. 배도 만져주고 쓰다듬어주고 들어온단다.
밭에 있는 식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한다. 수시로 살펴보는 남편의 정성에 실하게 자란 우리집의 밭작물들을 보고 동네 사람들이 농사짓는 사람보다도 더 농사를 잘 짓는 찐 농부라고 했었다.
호돌이가 적응하면 진돌이와 함께 놀 수 있도록 풀어놓아야겠단다. 코코와 진돌이가 함께 놀았던 것처럼..... 호돌이의 목줄을 잡고 아침 운동을 가려다가 호돌이가 아직 잔디밭을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니 시간이 좀 걸려야 할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