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다보면 반추 작업을 많이 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초식동물들처럼 섭취했던 먹이를 반추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과거와 기억을 되살려서 음미하고 취사 선택해서 소재로 활용하게 된다.
글감의 소재가 상당수 과거를 기억해서 반추해야 하는 작업이다보니 지나간 과거를 들추지 않을 수 없고 때문에 때로는 아픔을 때로는 슬픔을 다시 느껴야 하는 기억도 있다. 그러나 공통점은 당시에 느꼈던 아픔과 슬픔보다는 많이 옅어지고 희미해졌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그 당시에는 하늘을 날 것 같았던 기쁨도 당연했던 일처럼 무디어졌으니 그래서 남은 삶을 꿋꿋하게 살아낼 수 있는 모양이다.
맨 밑에 깔려서 두 손으로 힘껏 잡아빼기도 힘든 어렸을 적 과거들을 기억하고 끄집어 내는 것을 보면 기억력이 없어졌다고 그래서 치매를 염려하며 불안해하는 일은 없어도 될 것 같다.
다섯살 우리 지원이 만한 때였을까?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보다 더 어렸을 때였을 수도 있어. 너무나 아파서 엄마 등에 업혀 병원에 오갔던 일도 눈에 선하고 오가는 길 한 살 밑 동생도 업어달라고 언니가 업혀 있는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보채던 동생의 모습도 선해.
얼마나 아팠는지 그 아픈 느낌도 엉덩이에 잦은 주사로 무서워했던 기억도 선한 걸. 뿐만 아니라 한 발자욱도 걷기 힘들어 주저앉아 마냥 엄마를 보채던 기억도 그대로 남아있는 것을 보면 신기하지 않을 수 없어. 그러고보니 우리 엄마에게 나는 이쁘지 않은 애물단지였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네. 우리 엄마를 많이 힘들게 했을 테니까.....
학창시절에는 앉아서 공부하기도 힘든 체력이었어. 공부를 하고 싶은데 해야만 하는데 앉아있기가 너무나 힘들어서 엎디어 울 때도 많았었지. 주변에서는 내가 늘 아픈 사람 같다고 했었어. 얼굴 색이 노란게 늘 병자 같다고.
관심이 있고 진심 염려가 되기 때문에 해 준 말들이었다는 것을 훨씬 나중에야 깨달았지만 감수성이 예민한 학창시절에는 정말 듣기 싫은 말이었지. 좋은 말도 한 두번이지 너무 자주 듣다보니 나이가 든 지금까지도 행여라도 병자 같다는 말을 듣진 않을까 신경이 쓰일 때가 있어. 그래서 나름 정성들여 화장하는 것을 보면 염려해 준 말들이 나도 모르게 뼛속까지 스며 들었던 모양이야. 다른 것은 많이 무디어진 편인데 얼굴 색만큼은 감추려고 애를 많이 쓰는 것을 보면.....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무모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습관이 되어버린 게지.
먼 길 걸어 학교에 다니느라 장단지에 자주 쥐가 나서 밤잠 자다말고 소리를 지르며 울곤 했었지. 그 때마다 우리 엄마는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큰딸 장단지 주물러 주느라 애를 많이 쓰셨어. 아, 지금 생각하니 나는 여러 아이 몫으로 우리 엄마를 아주 힘들게 했던 매우 나쁜 아이였구나. 그렇다고 엄마가 안 계신 지금 어떻게 해드릴 수도 없고.....
우리 엄마의 말을 떠올리면 내가 아기였을 때 엄마가 잠시 일보러 나간 사이 옆집 할머니께서 떠 먹여 주신 밥으로 체해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하셨어. 그 뒤로 아픈치레를 많이 했다고 하시더라구. 그러니 내가 기억하고 있는 때보다도 훨씬 이전 부터 우리 엄마를 힘들게 한 딸이었어.
우리 엄마와 함께 했을 때의 기억을 하나하나 떠올리려니 가슴이 미어진다. 내가 우리 엄마를 얼마나 힘들게 한 딸이었는지 그리고 못된 딸이었는지 24년 함께 사는 동안 끈질기게 우리 엄마를 아프게 하고 힘들게 했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한다.
어디 24년 뿐이랴. 결혼 이후에는 약한 몸으로 애들을 못 키운다시며 핏덩이 때부터 우리 아이 둘을 도맡아 키워주셨고 늘 내 건강을 염려하셨던 우리 엄마였다. 방학 때마다 내려오는 딸의 얼굴을 보고
"먹고 싶은 것 먹어야 하고 쓰고 싶은 것 쓰고 살아야 해. 옛말에 안 먹고 안 입고 모아두면 갓 쓰고 대신 쓸 사람이 나타난다고 했단다."라며 걱정을 하셨으니 전혀 틀린 말이 아니었다.
평생 그리도 좋아하셨던 하나님 품으로 가신 사랑하는 우리 엄마, 부디 그 곳에서는 평안하시기를 두 손 모아 빈다. 엄마를 많이 사랑하셨던 아버지와 함께 계신다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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