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한 통곡물밥, 현미밥

by 소미소리



자연식물식을 무한대에 가까운 다양한 성분들이 교향곡처럼 조화롭게 작동하는 ‘하나’의 치료법으로 상상한다면, 이 약은 광범위하고 다양한 질환에 작용해 ‘만병통치’라 부를 수 있다.(p.180) 콜린 캠벨, <당신이 병드는 이유>


큰 태풍도 없이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있다. 더운 날씨가 고만고만하게 이어지는 날들이었다. 작년 여름의 후텁지근함은 없었지만, 강렬한 뜨거움이 지루한 날씨였다. 그렇게 기승을 부리던 더위도 한풀 꺾여서 벌써 아침저녁으로는 으슬으슬한 기운마저 감돈다. 습하고 뜨거운 여름 날씨는 알레르기 피부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힘든 계절인데, 이런 날씨에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된 채로 여름을 보냈다. 작년 여름, 갑자기 아토피가 도졌을 때에는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올여름에는 너무 더운 날은 바깥산책 대신 홈트도 하고, 무리한 여름날의 휴가 대신, 초여름의 휴가를 다녀왔다. 가능하면 뙤약볕에는 나가지 않고 시원할 때에만 돌아다니는 식으로 일정을 조정했다. 어쩔 수 없이 뜨거운 볕에 나가면 아토피 피부가 도지기도 했고, 한 번 도진 피부는 진정되려면 며칠이고 고생해야 했지만, 그럴 때에는 자연식물식을 더 엄격하게 유지하고, 모노다이어트(생채소와 과일만 먹는 다이어트)를 하거나 짧은 기간 단식을 하기도 했다. 속수무책으로 당할 때와는 또 다르게, 내가 의지를 가지고 뭔가를 해 나갈 수 있으니 그 행위 자체만으로도 힘이 되었다.


냉장고에 채소반찬을 여러 가지 만들어 둔 데다가, 며칠 전에 담근 물김치가 넉넉하다. 게다가 아이들마저 개학을 해서, 집에서 식사할 일이 줄어들고 보니, 반찬 만들기에 소홀하고 있다. 사실 내 자연식물식 반찬은 딱히 만들지 않아도 냉장고의 채소 반찬과, 김구이, 그리고 생들기름 약간, (며칠 전부터 다시 먹기 시작한) 견과류 멸치볶음 정도면 충분하다. 첫째 아이는 저녁까지 밖에서 먹고 둘째 아이 저녁은 비빔밥을 해 주기로 했으니 새로 반찬을 만들 일이 없다. 무생채가 냉장고에 아직 있으니, 밥에 무생채를 듬뿍 올리고 생들기름과 고추장으로 간을 하고, 계란프라이 두어 장 부치면 무생채 비빔밥은 완성이다. 밥은 두 가지 버전으로 짓고 있다. 가족들이 먹을 백미밥과, 자연식물식 현미밥을 따로 짓는데, 처음에는 두 가지 밥을 짓고 보관하기가 번거롭더니 이제는 익숙해졌다. 현미는 물을 많이 잡고, 오래 불리거나 전기밥통의 발아현미 기능을 이용해야 부드러운 밥이 된다. 몇 끼니를 먹을 밥을 한 번에 지으니 식은 밥은 밥공기째 찜통에 올려서 한 5분 찐다. 발아현미밥으로 지어서 그랬는지, 식은 밥을 맛 보니 나쁘지 않아서 데우지 않고 그냥 먹었다. 백미밥은 식으면 떡이 돼서 맛없는데, 발아현미밥은 식으나 뜨거우나 식감에 차이가 거의 없다. 날도 더우니 식은 밥을 택했다. 찜통에 이미 열이 오르고 있기에 현미밥 대신 냉동실의 찐 옥수수를 한 김 올려서 간식으로 먹었다.


자연식물식 52일째다. 백미의 촉촉한 느낌이나 찹쌀현미밥의 쫀득한 맛이 좋았고, 현미밥은 껄끄러워서 도저히 못 먹겠더니, 이제는 구수한 현미밥이 더 좋다. 어쩌다 현미밥이 다 떨어져서 가족들 먹으라고 해 둔 백미밥을 먹게 되면 싱겁고 밍밍해서 맛이 없다. 자연식물식 식재료에 적응이 되어가니 맛의 신세계를 보고 있다. 이제는 자연식물식을 엄격하게 유지하지 않으니 좋아하던 생선은 다시 조금씩 먹고 있다. 국에 들은 고기가 어쩌다 내 국에 섞여 떠지면 그 정도도 먹는다. 단식 후 몸무게는 다시 단식 전으로 돌아왔고, 이사를 하느라 상했던 피부도 다시 그전의 상태를 회복했다. 눈의 이물감이나 갈증은 없지만, 과식을 할 경우에는 다시 갈증이 심해지니, 늦은 시간에는 먹지 않고, 저녁을 좀 이른 시간으로 당겼다. 저녁에 허기가 지면 채소나 과일을 먹는다.


*표지 사진 : Unsplash의 Seiya Ma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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