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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건강도 선택할 수 있을까요?

윌리암 글라써의 선택이론과 김미혜 작가의 <보통의 가족이 가장 무섭다>

by 소미소리

행복과 불행이나 질병과 건강도 선택일까? 나는 그동안 선택의 영역을 참 좁게 생각하고 살았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나면, 혼자서 먹을 점심을 차릴 지, 말 지, 혹은 무엇을 차릴 지 정도, 외출할 때, 내 몸이 편한 옷을 입을 지, 남 보기에 좋은 옷을 입을 지 정도는 내 선택이지만, 나의 행복도 내가 선택하고 있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으니, 건강을 선택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할 리가 없었다. 행불행이나 질병은 타고 나는 것이 더 크고, 다만 나의 몸과 마음을 알고 잘 관리하고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김미혜 작가의 <보통의 가족이 가장 무섭다>에서 소개된, 윌리암 글라써의 선택이론을 보면 그렇지 않다. 심혈관이나 알러지 같은 만성 질환 중에는 방어기제의 일환으로 걸리는 경우가 많다. 마찬가지로 행복도 본인이 선택하는 거다. 아이를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내 요구사항을 강요할 지, 아이가 원하는 것을 충분히 듣고 설득과 협의의 과정을 거쳐서 서로가 납득할 만한 것으로 선택할 지, 아이와 편안한 관계를 유지할 지, 아이와 멀어질 지도 선택할 수 있다.


나는 책복이 많은 사람이다. 사람복이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무엇보다도 책복이 참 많다. 어쩌다가 보게 되는 책도 이렇게나 좋고, 내가 아는 작가님이 쓰신 책이어서 한 권 사다가 보아도 관점이 달라지는 선물을 받게 되니, 책 읽는 것은 나에게는 늘 풍족히 받는 일이다.


전에 심리학을 독학으로 공부한 적이 있다. 무엇보다 나 자신에 대한 탐구를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다. 심리학 기본서를 보았고, 그 이후에도 (타 전공으로) 대학원에서 기회가 닿는 대로 심리학이나 상담 관련 과목들은 놓치지 않고 수강했다. 그리고 마지막 학기에는 <고급집단상담>까지 참여했으니,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어하던 마음의 갈증은 어느정도 풀린 상태지만, 이런 저런 공부를 하면서도 순식간에 관점이 바뀌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김미혜 작가를 통해서 알게 된, 현실치료상담의 선택이론은 바로 내 행동을 점검하는 데 적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나는 피부가 만성적으로 예민한 편이어서 뭔가가 잘못 닿거나, 때로는 별 이유 없이 피부를 긁적이는 일이 많은데, 가만 보니 이것도 내가 무엇인가를 직면하기 싫어서 회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쓰는 기제가 아닌가 싶다. 싫은 일을 해야 할 때, 아무 잘못도 없는 피부를 벅벅 긁는 식으로 말이다. 긁고 싶을 때 가만 멈추었다. 나의 선택이다,라고 생각하니 더 이상 긁어 대는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남편을 미워할 지, 용서할 지, 지난 어떤 시간의 나를 미워할 지, 이해할 지, 부모님을 멀리 할 지 가까이 할 지, 자녀에게 따뜻하게 말할 지, 냉정하게 지시할 지, 이 모든 것이 선택이고, 그 선택에 따라서 행불행이 결정이 된다는 것이 놀랍다.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일까?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이미 지나가 버린 어는 순간으로 달려가서 “그걸 선택하지 마, 그 사람이 아니야, 당장 거기서 벗어 나!” 이렇게 말해 주고 싶지만, 이미 지난 것은 그것 대로, 그 상황에서 잘 견뎌 준 나에게, 그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나에게 위로를 해 주고 포옹하고 이해하고 또 다시 위로를 해 주는 것이 지나간 일을 잘 떠내 보낼 수 있는 방법이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한 번 떠올려보자. 그리고 그 때의 나를 불러보자. 그리고 말해 주자. “그것 밖에 선택할 수 없어서 얼마나 힘들었니. 괜찮아. 고생 많았어. 정말 고생 많았어. 너의 존재 그대로, 거기에 있는 너를, 그것을 선택한 너를 사랑해.”


최선의 선택은커녕 어떻게 그런 최악의 선택을 했느냐고 누군가를 탓하고 몰아세우고 싶을 때, 어떠한 방어기제로 그렇게밖에 선택할 수 없음을 이해하면 조금 더 쉽게 수용을 할 수 있다. 충분히 어려움을 나누고, 누군가에게 또 다시 충분히 수용 받는 과정이 그 방어기제를 벗어나 자신의 날개를 펴는데 도움이 된다. 아무도 나를 수용해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까? 그럴 때에는 먼저 스스로를 수용해 주면 된다. 나에게 말을 걸고 인정해 주는 거다. “고생했어. 마음이 어려웠지. 괜찮아. 잘했어.”하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자.


역시 나는 책복이 많은 사람이다. 이렇게 마주치는 책마다 좋으니 오늘도 이렇게 책을 앞에 두고 글을 쓰고 있다.


커버 사진 출처 : Photo by Caju Gome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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