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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터진 연필깎이

가득찬 연필깍이와 수전, 그리고 페터 한트케의 어머니와 나

by 소미소리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의 수전과, 페터 한트케의 <소망 없는 불행>의 어머니 중에 나의 삶의 모습은 어디에 더 가까울까? 아니면 두 사람의 삶은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을까? 내 삶은 두 명의 삶과는 다르지만 완전히 동떨어지지도 않은 어딘가에 위치해 있다. 여성이라서 특별히 엄청난 문제에 봉착하여 살거나 자아실현을 전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이기 때문에 느끼는 어깨의 짐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를테면, 아이들을 소소하게 살피고 집안을 세심하게 살피는 일은 맞벌이를 하는 여자들에게도 예외 사항은 아니다. 수전의 삶과 피터 한트케가 소설에서 묘사한 어머니의 두통을 쉽게 지나치지 못하는 이유다. 책복이 많은 나는, 어쩌다 보니 여성의 삶에 관한 책을 연이어 두 작품을 보았고, 지나치다가 발에 걸린 연필 몇 자루를 보며 상념에 빠졌다.


아이들이 사용하고 집 여기저기에 놓아둔 연필을 몇 자루 찾았다. 날렵하게 연필을 깎고 나니 연필깎이가 뻑뻑하다. 책상마다 올려져 있는 연필깎이 두 개를 비우려고 가루받이를 꺼내어 탈탈 털어냈다. 연필이 깎이는 톱니바퀴 부분에도 연필가루가 많이 끼어 있기에 손잡이 부분을 잡고 살살 돌렸다. 금방 빠질 것으로 기대했던 연필가루가 얼마나 꽉 모여서 들러붙어 있는지 쉽게 빠지지 않는다. 손가락을 깊이 집어 넣어서 걸려 있던 연필가루를 꺼냈다. 꺼내도 꺼내도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연필가루가 한참을 나왔다.


기염을 토하듯 쏟아져 나오는 연필가루를 보면서, 내게 떠오른 단어는 당황스럽게도 ‘용서’였다. ‘나만 많은 짐을 지고 사는 것이 아니었구나.’ 가사와 육아와 맞벌이를 병행하던 수년의 시간, 나는 배 터진 연필깎이 마냥 할 일을 잔뜩 짊어지고 있었다. 직장에서도 할 일이 눈덩이처럼 몰아쳤고, 집에 와서도 쉴 틈 없이 루틴한 집안일을 했다. 그리고 아이들을 살피고 나면, 쓰러질 힘 밖에는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고단한 날이 얼마나 많았던가? 주말이면 밀린 잠을 몰아 자기도 하고, 긴장이 조금 풀린 어느 날은 심한 몸살 감기로 드러눕기도 했었다.


그런데 배에 잔뜩 연필가루를 머금고 있던 연필깎이를 시원하게 털어내면서, 숨 죽이고 있던 이 조그만 연필깎이가 얼마나 많은 연필을 깎고도 이렇게 조용히 제 할 일을 꾸역꾸역하고 있었던 것인지, 내 남편, 내 가족, 내 이웃 모두가 사실은 자기 짐을 한 채씩 짊어진 채, 말 없이 책무를 감당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스쳤다.


집을 정리하다가 찾은 작은 연필 몇 자루와 배가 가득 찬 연필깎이가 말을 걸어온다.



커버 사진 출처, Photo by Nicolas Picard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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