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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이 통하지 않는 선호의 문제

피아노 두 대를 다 좁은 방에 들일까요?

by 소미소리

아이방에 업라이트 피아노를 한 대 들이기로 했다. 몇 년 전에 전자피아노를 한 대 사줬는데, 기대 이상으로 아이가 피아노를 잘 친다. 전자피아노로는 부족해서, 업라이트 피아노를 들이기로 했다. 전자피아노를 버리고, 그 자리에 업라이트 피아노를 놓으면 제격인데, 밤에 피아노를 치려면 전자피아노를 치울 수는 없다.(전자피아노의 헤드폰 기능이 밤에는 유용하다.) 한정된 공간에 피아노 한 대를 추가로 넣으려면, 가구 하나는 버려야 한다. 고민할 것도 없이 책장을 빼기로 했다. 5단 책장이니, 비우려면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간다. 일단 책장의 책을 다 빼내야 하고, 그 책들을 모두 제대로 자리 잡아 주어야 하고 마지막으로 책장을 밖으로 빼내고 폐기물 스티커를 사다가 붙여야 한다. 다른 건 둘째치고 책장을 비우는 게 보통일이 아니다. 15칸의 책을 무슨 수로 다 빼나? 아이는 피아노가 들어올 생각에 신이 나서 제법 빠르게 책을 거실로 빼낸다. 다른 집안일을 하고 있던 남편과 나는 비로소, 갈피를 못 잡고 거실에 나온 책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리에는 딱 두 가지 고민이 필요하다. 첫째는 버릴지 말지이고, 둘째는 버리지 않을 물건을 자리 잡아 주는 것이다. 필요 없는 책을 버려서 책을 줄이는 작업이 필요하다. 다시 안 볼 것 같은 책은 묶어서 따로 내놓고, 누군가에게 줄 만한 책은 묶어서 한 곳에 두었다. 그러고 나니 나머지 책이 어지간히 정리가 된다. 두고 볼 책은 거실 책장 사이사이에 자리를 잡아줬다.


그런데 이 정리가 하고 나니 쉽지, 정리를 시작하기 전에는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거실에는 피아노가 너끈히 들어갈 만한 공간이 있었다. 그러니 피아노를 거실에 둔다면 책장을 뺄 이유도, 필요도 없다. 남편은 피아노 한 대는 거실로 빼자고 아이를 설득했다. 책장을 하나 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므로 남편의 주장은 그럴듯하다. 그런데 아이는 거실에 피아노를 두면, 별로 치게 되지 않을 거라면서 아빠를 설득한다.


선호의 문제에는 설득이 통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겪어 온 일이다. 부모 자식 사이에는 그래도 깊은 배려가 깔려 있다. 아니 그보다는 이타적인 사랑이 깔려 있다. 결혼 전에도 가족 사이에 절대 논리적으로 서로를 이해시킬 수 없는 문제가 있다. 특히 선호의 문제에는 절대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을 왜 사랑하는지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사랑하면 왜 고통을 받는지도 도저히 논리적인 설명으로 이해시킬 수는 없다. 자식이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이유로 도통 마음에 들지 않는 부모는 끝까지 반대를 할 수는 있어도, 자녀를 완전히 설득시키기는 어렵다.


Photo by Lorenzo Spoleti on Unsplash

결혼을 하고 나서 부부간에는 어떤가? 결혼 전과 똑같다. 아니 더하다. 내가 대학원에 갈지 말지, 전공을 이것으로 할지 저것으로 할지, 배우자와 상의해서 쉽게 합의가 되는 문제가 아니다. 이것도 개인적인 역사와 개인의 선호가 합쳐져 결정하는 것이므로 대화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다만, 대화를 통하여 서로에게 세뇌되든 이해하든 상대방의 의견에 내 의견을 조금씩 맞추어 갈 뿐이다.


우리집의 피아노는 어떻게 되었을까? 당연히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 책장을 비우는 땀 흘리는 작업을 마치고 아이 방의 한 켠을 비워 두었다. 업라이트 피아노가 들어 올 자리가 반짝반짝 빛난다. 아이가 아빠를 설득한 대로, 자기 방에 전자피아노와 업라이트 피아노가 다 있어야 피아노를 편하게 칠 수 있다고 하니, 매일매일 피아노 연주 소리를 듣겠지? 아이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아빠, 아빠 컴퓨터가 두 대라고 쳐. 두 대 다 방에 있어야지, 한 대라도 거실에 있다면 좋겠어?”

아빠의 대답은 당연히 “난 한 대만 방에 있어도 괜찮아.”였지만, 결국 남편도 자기의 선호대로 컴퓨터를 둘 다 서재에 배치하고 지낼 거다.


그러니, 아들 방은 아들의 선호대로…


커버 사진 출처, Photo by Nathan Dumla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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